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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아 Jun 20. 2021

잘해서가 아니라, 잘하고 싶어서.

퍼스널 브랜딩이 왜 싫었냐면

언젠가부터 넘쳐나고 있는 '일잘러'라는 말. 이 말 너머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정말 일을 잘하는 일잘러, 일잘러가 되고 싶은 과대포장러. 온라인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일잘러 중에는 후자도 꽤 있는 것 같다. 자기PR에 이어 퍼스널 브랜딩으로 이어진 흐름을 타고 내가 내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글로 풀어내는 사람들. 다니는 회사에서 보여주는 실력보다 글의 수준이 더 출중한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도 가끔 들었다. 그래서 나는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내가 회사에서 만나본 일잘러들은 대개 은둔고수형이었다. 비가 오던 눈이 내리던 일정을 맞춰내는 기획자, 프레젠테이션과 협상에 능한 비즈니스 매니저, 검색 쿼리량을 확인해 모두가 지나칠 법한 광고 키워드를 미리 세팅해 두는 마케터. 이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얼마나 잘하는지 자랑하는 법이 없었다. 회사가 성장가도에 있다면 이렇게 '내 일인데 이 정도로 하는 건 당연하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그리고 이런 고수들은 대개 온라인에 글을 쓰지 않더라.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 글로 옮길 게 못 되어서, 혹은 일이 많아 시간이 없어서.


일을 잘하는 사람은 직장 동료들이 다 알아본다. 회사 밖에서 자신을 알리려 노력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내 일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자리도 있다. 그런 자리에 있는 사람이 한층 성장하고 싶다면 회사 밖 활동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내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또 어떤 것들을 공부하고 있는지. 그렇게 그들이 올리는 콘텐츠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럼 대단한 거 아닌가? 겉멋만 든 글을 쓰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퍼스널 브랜딩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건 아무래도 불합리하다.


회사에서 브랜딩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게 내 일이다. 글이야 많이 썼지, 브랜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다. 내가 잘하고 있나 몇 년째 긴가민가하다. 그래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뭐라도 꾸준히 읽는다. 이번에 읽은 것도 그중 한 권으로, 브랜드 스토리텔링에 대한 480페이지짜리 재미없는 책이었다. 작가는 회사뿐 아니라 퍼스널 브랜딩의 대가로 업계 핵인싸인 듯했다. 책 말미에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자들의 인터뷰까지 여럿 실려 있었고, 그중 한 명은 이런 말을 남겼다.


당신의 브랜드가 무엇으로 알려지기를 바라는지 결정하세요. (...) 사람들은 자동으로 그 주제를 당신의 브랜드에 연결 짓기 시작할 겁니다. 제 퍼스널 브랜드에서 실제로 3개월 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저는 혼합 현실과 홀로그램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상태로 관련 팀에서 업무를 시작했지요. 그리고 3개월 동안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매일 혼합 현실과 홀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제가 '혼합 현실 부분 세계 최고 인플루언서 50인'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브랜드 스토리텔링 바이블> 중


뭐야, 이 사람은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로 인플루언서가 됐는데 그래도 괜찮은 거야? 삐딱한 시선으로 문장을 훑고 책을 덮었다. 재미는 없었다만 실전에 써먹을 것들이 꽤 있는 책이었는데, 요 며칠 머리에 떠오르는 건 이상하게 저 문장뿐이었다. 맘에 들지 않는 무언가가 자꾸 떠오르는 건 무의식중에 찔리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3년 전. 나도 전혀 모르는 분야에서 업무를 시작한 적 있다. AI라니, 이건 문과생이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초딩 때 나모 웹에디터로 홈페이지를 만든 게 컴퓨터랑 친했던 마지막 경험이었는데! 하지만 정말로 열심히 공부했다. 매일 AI 이야기를 해댔다. 그걸 보고 혀를 차는 사람은 없었다. 회사의 모든 분들이 친절했고, 잘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이 기특해서였는지 일대일 과외 수준으로 뭐든 알려주셨다. 전 직장도 아니고 전전 직장인데 지금까지 좋은 기억, 좋은 사람이 많이 남은 곳이다.


 모든  내가  알지도 못하지만 알고 싶어서 펼치고 다닌 이야기와 글 덕분이었다. 세상엔 즐거운 마음으로 뉴비를 돕는 멋진 선배들이 많다. 바라건대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선배일  있고. 그럼 내가 남기는 글은 어떤 방향에서건 도움이 되는  아닐까?  몰라도 공부하며 쓰는 글은 내가  배울  있어서 좋고, 아는  정리하며 쓰는 글은 어떤 초심자에게 참고가   있어서 좋고.


멋진 글을 쓰기 위해  '내가 전문가니까'라는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는  같다.  생각해보면 내가 싫어하는  전문가인  퍼스널 브랜딩만을 위해 얕은 지식을 퍼뜨리는 글이었지, 배우고 있거나 배운  알리는 글은 아니었다. 자기가 아는 것들을 정리해 올린 수많은 글에서  도움을 받기도 했고.


지금 다니는 회사로 온 지 이제 3개월 되었다. 얼마 전 받아들었던 수습기간 평가 문서엔 오래 남을 문장 하나가 있었다. '일을 본인이 잘 아는 방식으로만 하는 것 같다'는 피드백. 분에 넘치는 많은 칭찬이 있었는데, 또렷이 남는 건 저 문장이다. 맞다, 뜨끔한 게 있어서다.


나는 기억력이 정말 나쁘다. 어제는 회의 중에 " 생각에는 말이죠, ...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죠? 까먹었어요." 해서 팀을  터지게 만들었다.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자주 깜빡하는  아니냐며 걱정해주는 분도 계셨지만 원체 이랬다. 그래서다. 나름 일을 잘하고 싶어 이것저것 뒤져 왔지만  까먹어서 머리에 남는  별로 없다. 글로 정리해 남겨두어야 그걸 보고 '과거의 , 이런  썼다니 대단한데?' 하는 식이다.    남긴 글을 보며 얼마 전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런     있다면 자신감이  붙을 텐데.


표면적으로는 귀찮음, 그 너머에는 잘하는 척으로 보일까 하는 두려움. 그런 것들이 이름 걸고 글쓰는 걸 어렵게 한다. 하지만 이건 의외로 마음만 바꾸면 해결될 문제였다. 나는 세상을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할 필요가 있다. 뭐라도 배우고, 배운 게 있다면 누구든 볼 수 있게 남겨두자. 조금 더 뻔뻔하게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잘해서가 아니라, 잘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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