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할 수 없는 일을 통제하려고 할 때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나는 답답할 때 철학자가 쓴 책을 본다. 그리고 뜻밖의 글에서 해답을 찾는다.
철학자가 쓴 책은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기준, 즉 윤리적으로 옳은 방향을 벗어나지 않게 도와준다.
그 기준은 이미 알고 있지만, 답답한 순간에 잊어버린다.
리모컨이 필요할 때, 매일 놓아두던 탁자에 리모컨이 없는 것처럼 '기준'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철학이 필요하다고 말하나 보다.)
내가 옳다는 견지를 유지하면서 안전과 돈 벌기에 집착하는 와중에도 윤리와 도덕을 지켜야 한다.
윤리와 도덕을 준수해야 법의 테두리 안에서 나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 철학자들이 깨달은 것이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지 마라.”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통제할 수 없는 일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했다.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을 제자인 아리아노스가 엮은 《엥케이리디온(The Enchiridion)》에는 ‘통제할 수 없는 일’에 관한 통찰이 여러 번 나온다.
《엥케이리디온(The Enchiridion)》은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라는 제목으로 우리말로 번역 출간되었다. 정말 훌륭한 가르침을 담은 책이다.
‘통제할 수 없는 일’에 관한 에픽테토스의 가르침 세 가지를 옮겨 본다.
통제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라
우리는 본능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자유와 환희와 충만함을 느끼고,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불안과 억압과 위태로움을 느낀다. 당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것, 즉 타인에 귀속된 것을 당신의 소유로 삼고자 한다면 갈등과 분란과 고통이 초래될 뿐이다. 당신이 자신에 속한 것에 만족하고 타인에게 속한 것을 탐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당신을 비난하거나 배척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 또한 타인을 비판하거나 정죄할 일이 없을 것이며 억지로 원하지 않는 일을 행해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혐오를 거둬라
통제할 수 있는 나쁜 일은 회피하면 그만이지만, 통제할 수 없는 질병과 죽음과 가난은 회피할 방법이 없다. 통제 불가능한 것을 욕망하는 사람은 좌절할 수밖에 없고, 결국 욕망의 먹잇감이 되어 통제 가능한 것들마저 얻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무언가를 욕망하거나 혐오할 때는 품격과 분별, 절제를 잃지 말아야 한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을 좋거나 나쁘다고 규정하지 말라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하지 않고, 통제할 수 있는 일에서만 선과 악을 구분한다면 그 무엇으로부터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만일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을 좋거나 나쁜 것으로 규정한다면,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 신을 탓하고 책망하게 된다.
아버지가 좋은 것을 물려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원망의 마음을 가지기도 한다. 농부들은 신을 원망하기 쉽고, 선원이나 상인, 배우자와 자녀를 잃은 사람도 신을 원망한다. 많은 이들이 이익이 있는 곳에서 신앙을 찾기 때문이다.
에픽테토스, 나를 위해 살지 않으면 남을 위해 살게 된다, 페이지2북스, 2024
심리학자들은 스트레스, 무기력증, 우울증, 번아웃 등에 대처하고 예방하는 방법으로 명상, 요가, 걷기 등을 제시한다. 명상, 요가의 핵심은 ‘현재에 충실하기’다. 현재에 충실하기는 단순하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과거와 미래를 내버려 두면 된다.
그게 전부다.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은 현재 내가 통제할 수 없다. 결국 현재와 미래를 내 의지에 따라 통제하려고 할 때 스트레스, 무기력증, 우울증, 번아웃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집중할 부분은 ‘비옥한’이다. 비옥한 공허는 새로운 꽃, 작물을 심으려고 일군 토양(비옥한 공터)이다.
실제로 경작할 때 땅을 갈아엎는 것과 같다.
과거에 갇혀있는 벽을 허물고 비옥한 공허 상태를 만들려면 새로운 취미 혹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면 된다. 현재에 집중해서 ‘새로움’을 추구하면 나를 바꿀 힘과 의지가 생긴다.
뛰어난 사령관 테세우스는 배를 몰고 전쟁에 나간다. 배는 여러 날 격렬한 전투로 인해 이곳저곳이 파손된다. 전장에서 돌아온 배는 항구에서 판자 몇 개를 덧대고 파손된 부분을 임시로 고친 후에 다시 전장에 나간다. 테세우스 사령관은 적의 배를 들이받으며 전쟁을 치른다. 배는 다시 수리가 필요한 상태다. 다시 항구로 돌아와 배를 수리하고 다시 전장에 나가서 적군의 배를 들이받으며 치열한 전투를 반복한다. 반복되는 파손과 수리로 배에는 원래 있던 판자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가 된다.
전장에서 파손되고 수리와 보수를 하고 또 전장에 나가서 파손되고 다시 수리는 과정을 반복한 배는 처음 항해를 시작했을 때와 같은 배일까?
인간도 마찬가지다. 날마다 세포가 손상된다. 잠을 자는 동안 손상된 세포가 재건되고 회복되고 일부는 새로 만들어진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꽤 오래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있다. 부서나 직장을 옮기면 이전 동료와 관계는 서서히 끊기고 새로운 동료를 만난다. 취미도 마찬가지다. 학창 시절 즐기던 취미를 성인이 돼서도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전장에서 파손되어 수리를 반복한 배는 처음과 같은 배가 아니다. 과거의 나는 현재의 나와 다른 사람이다. 성격, 취미, 인간관계, 사는 곳, 가족 등이 바뀐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간직해야 하지만 거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서 건설적 파괴가 필요하다. 그래야 비옥한 공터가 생긴다.
어제의 나를 잊고 비옥한 공터를 가진 나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다른 사람이 돼서 내일 아침을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