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나는 퇴직이 아니라 퇴근을 했다

by 퇴근한 팀장

회사 계정을 하나씩 삭제했다.


구글 캘린더를 탈퇴하고

메일 자동 로그인을 지우고

단체 채팅방을 나왔다.


십 분쯤 걸렸다.


25년이 그렇게 끝났다.


생각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화도 없고, 메시지도 없고,

세상은 평소처럼 조용했다.


조금 허무했고

조금 이상했고

조금 가벼웠다.


퇴직이라기보다는

아주 오래 야근하다가

늦게 집에 돌아온 느낌에 가까웠다.


‘아… 나 퇴근했구나.’


그동안 나는

대리였고, 과장이었고, 부장이었고,

마지막엔 팀장이었다.


늘 직함으로 불렸고

늘 회사 사람으로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나다.


아침에 운동을 가고

애들과 점심을 먹고

평일 낮 카페에 앉아 있고

오래 잊고 지냈던 전공 책을 다시 펼친다.


회사 밖에서 처음 살아보는 시간.


낯설고

편안한 이 하루들을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이건

퇴직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오래 일한 사람이

처음으로 ‘퇴근’한 뒤의 이야기다.


나는 오늘도

퇴근한 팀장으로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