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첫 러브레터 수신자는

내가 아니었네

by 잇츠효주 itshyoju


아이가 난데없이 색종이를 꺼냈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눕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편지를 써야 한다며 거실로 달려 나갔다. 아직 여섯 살, <한글용사 아이야>에 나오는 쉬운 단어 정도를 읽고 쓸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작은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적는 모습은, 대통령 연설문이라도 준비하는 듯 진지했다. 나는 몰래 고개를 내밀고 지켜봤다.



왼쪽 위에 적힌 글자는 "아주 사랑해."


순간 결말을 짐작했다. 이건 러브레터고 수신인은 당연히 나일 거라고. 방금 전까지 내 옆에서 까르르 웃던 아이니까. 엄마의 사랑과 인정에 늘 목마른 아이니까. 곧 이 편지를 내게 건네며 나를 더욱 사랑해달라고 재촉할 거라고.



그런데 다음 글자가 이상했다.


'주'


아들의 러브레터


순간 내 이름 효주의 끝음절인가 싶었다. 아니었다. 아이는 내 눈치를 보기는 커녕 계속 글을 이어갔다.

다 쓴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아! 주! 사! 랑! 해! 주! 아! 야!"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답이라서. 그걸 진지하게 읽는 아이가 귀여워서. 그리고 어쩐지 조금 서운해서. 나랑 떨어지는 게 싫어 평생 결혼도 안 할 거라고 했던 아이가 생애 첫 러브레터를 주아에게 바치다니.



나는 다급히 물었다.

"엄마는?"


아이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다음은 엄마야!"



뭐?


입 밖으로 튀어나가려던 거친 농담을 간신히 낚아채 삼켰다.

그러다 문득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긴장이 풀린 웃음이었다.



예민한 기질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길 거부하던 아이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어른들에게 인사 한번 제대로 못해 부모를 곤란하게 하던 아이였다.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홀로 속을 태운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젠 무서운 곤충도 덥석 손에 쥐며 친구들 앞에서 박수를 받고, "아주 사랑해"라고 편지를 써줄 친구까지 생겼다.



편지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지만, 다행스러웠다.

내게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뿌듯했다.

그건 내가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물론, 결국 옆구리를 깊게 찔러 나에게도 한 장 쓰라고 했다. 쓰긴 썼다. 그게 진심인지, 아니면 내 눈빛이 무서워서 억지로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이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