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이 그리 좋드냐
엄마 산책가자!!!
아이의 말을 이제 믿지 않는다. 산책을 나서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 발자국 떼고 멈추고, 두 발자국 가다 쪼그려 앉는다. 아이가 원하는 산책은 풀밭 구경이다. 풀만 보이면 눈빛이 번쩍인다. 그 모습이 마치 숏폼에 중독된 뇌 같다. 강렬한 자극으로 가득한 산책길, 아이에겐 도파민 천국이다.
녀석은 겁도 없이 곤충을 덥석 집어 든다. 난 옆에서 다이소에서 산 천 원짜리 곤충통 들고 대기한다. 아무 거나 만지는 게 영 마음에 안 든다. 이상한 벌레한테 물리면 어쩌려고. 풀숲에 들어갔다 눈가가 밤톨처럼 부어오른 날도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우리가 아는 곤충만 잡아요!'라고 배웠다던데, 아이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하긴 내가 봐도 애초에 지킬 수 없는 약속이다. 모르는 걸 잡아야 재미있지.
거미줄과 지렁이를 만져대는 아이를 필사적으로 막고 싶지만, 곤충과 사랑에 빠진 아이 얼굴 앞에서 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어제도 그랬다. 돈가스를 먹고 500미터 떨어진 카페에서 크로플을 먹기로 했다. 지도 앱은 8분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40분이었다. 내가 열일곱 번이나 재촉해서 단축된 기록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세 시간 걸렸겠지.
크로플이 나오기 전부터 아이는 유리창에 붙은 벌레 한 마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처음보는 곤충인가 보다. 아이가 잡아도 되냐고 물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그러라고 했다. 속으로 그 벌레가 제발 도망쳐주길 바랐다. 우리가 와플을 다 먹을 때까지 안타깝게도 벌레는 미동조차 없었다. 결국 잡혔다.
관찰통을 차에 두고 온 아이는 주머니에서 소라 껍데기를 꺼냈다. 대체 소라 껍데기가 왜 거기서 나오는 거야. 없는 게 없는 저 주머니 때문에 우리집 세탁기가 고생 중이다. 소라 껍데기에 저 팔딱거리는 곤충을 담고 나뭇잎으로 막은 뒤 다시 500미터를 걸어서 돌아왔다. 아까보단 빨리 왔다. 저 팔딱이는 소라 껍데기 덕분에.
자식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더니, 곤충 덕질에 몰두한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오히려 내가 크는 것 같다. 오늘도 다짐한다. 아이가 마음껏 곤충을 바라보며 자기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몰입의 순간을 방해하지 말자고. 적당한 거리를 지키며 바라보자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응원이라고.
관찰통 천장을 뚫을 듯 높이 뛰는 방아깨비처럼, 아이도 언젠가 부모의 울타리를 힘차게 넘어설 것이다. 곤충에 몰두한 시간은 자기 세계를 깊이 탐험해 본 기억으로 남겠지. 그 흔적이 결국 아이를 지탱해줄 힘이 되리라 믿는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마음껏 빠져보는 순간을 많이 누리며 덕질의 기쁨을 아는 아이로 자라나기를.
파브르가 직업인 줄 아는 아이는 자기 이름 한 글자를 넣어 이렇게 소개한다.
"저는 지브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