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자니아에 다신 안 갈 거야

10시 오픈이나 7시에 가야하는 곳

by 잇츠효주 itshyoju


호텔 침대에 누워 '키자니아 가기 전 필수 시청 영상'이라는 걸 봤다. 볼수록 마음이 갑갑했다.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10시 개장인데 왜 7시에 가야 한다는 건지, 타임티켓은 또 뭔지, 줄을 대체 어떻게 서라는 건지. 키자니아 앱과 별도로 줄서기 앱이 따로 있는 걸 보고 한숨이 나왔다. 얼마나 열심히 줄을 서라고 앱까지 만들어 놓은 거야.


이 모든 걸 정확히 파악한 부모만 아이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이해를 못하면 피해는 내 아이들 몫이다. 두 아이가 그토록 기다리는 직업 체험을 못 하는 이유가 적어도 엄마가 되진 말아야 했다. 보고 싶지도 않은 튜토리얼 영상을 꾸역꾸역 시청하며 잠이 들었다.


키자니아는 다양한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새벽 6시, 아직 밖은 깜깜했고 조계사에 쌓인 하얀 눈이 더 밝게 빛났다. 두 아이를 겨우 챙겨 7시에 호텔을 나섰다. 인사동에서 택시를 타고 잠실로 갔다. 출근하는 차들을 뚫고 도착한 시각은 7시 45분. 문제는 키자니아가 어디인지 찾을 수 없다는 거였다. 7시부터 열려 있다며! 굳게 닫힌 롯데월드 문만 두드리다가 미화원 할아버지를 만났다. 저쪽으로 가서 왼쪽으로 꺾으라 했다. 내가 이상한 방향으로 갈 때마다 할아버지는 멀리서 소리를 질러주었다. 겨우 키자니아를 찾았다.



키자니아 가는 택시 안


급하게 기계를 찾아 대기표를 뽑았다. 대기 번호 9번, 발급 시각 7시 56분. 이 정도면 선방했다 싶었지만 그 유튜버 말대로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8시 45분에 발권을 하고 시계를 받으면 바로 뒤 타임티켓을 사러 뛰어야 한다. 머릿속으로 나름의 동선을 구상하며 미어캣처럼 대기번호 현황판을 지켜봤다.



드디어 발권을 했다. 시계를 받자마자 타임티켓 자판기로 달려갔다. 타임티켓은 추가로 돈을 내서 내가 원하는 시간의 프로그램을 미리 예약할 수 있는 제도다. 돈을 냈는데 또 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너도나도 사지 못해 안달이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다. 가장 인기가 많다는 소방관 체험을 먼저 끊고 점심시간에 맞춰 버거연구소를 예약했다. 잠시 헤맸지만 성공했다. 전쟁에서 승리한 전사의 표정을 지으며 남편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남편이 대뜸 물었다. "근데 여보, 저기 벌써 줄 서있는 건가?"



아뿔싸. 입구 대기선 앞에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타임티켓 끊자마자 줄을 또 서야되는 거였다. 키자니아 고수들은 이미 엉덩이 밑에 방석을 깔고 앉아 있었다. 정보격차를 실감하며 우리 가족은 찬바닥에 앉아 또다시 한 시간을 기다렸다. 아직 들어가지도 못했는데 진이 다 빠졌다.



9시 45분 출입구가 열렸다. 엘리베이터는 꿈도 꾸지 말라는 말을 떠올리며 계단으로 달려갔다. 오뚜기 마크가 보이자 바로 아이 팔뚝을 갖다댔다. 휴우 첫 타임 성공이군. 정작 아이들은 자기가 뭘 체험하게 될지도 모른 채 벤치에 앉아 기다렸다. 이미 지쳐 보였다.



체험복을 입히고 사진을 찍었다. 자식을 다 키워서 오뚜기에 취직시키면 이런 기분일까. 직원들은 아이들 머리에 헤어캡을 씌웠다. 위생을 신경쓰느라 환경은 신경쓰지 못한 듯했다. 체험이 끝날 때마다 헤어캡을 버리고, 다음 체험을 할 때 또 새 걸 받았다. 하루 동안 이곳에서 버려질 헤어캡의 숫자를 헤아리다 말았다.



쿠킹스쿨과 소방관 체험



벤치에 앉아 있으니 하기 싫다고 우는 아이를 데리고 손목 시계를 태깅하는 부모들이 보였다. "이럴 시간이 없다고!" 다그치는 소리도 들렸다. 이 비극은 아이 시계로만 줄을 설 수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부모 시계는 돈 쓸 때만 쓸모가 있었다. 타임티켓 살 때, 아이 사진 살 때.



체험이 시작됐지만 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온전히 바라보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다음 체험으로 어디를 공략해야 할지, 어느 길로 가야 가장 빠른지 계산하느라 바빴다. 계속 주위를 살폈다. 남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내가 놓친 건 없는지. 아이들의 표정보다 현황판을 더 열심히 살펴봤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이것저것 물어왔지만 제대로 대답해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멈췄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사람 조급하게 만드는 현황판



아이에게 좋은 걸 주겠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가령 아이의 기뻐하는 얼굴을 바라보는 일, 지금 이 순간을 같이 보고 같이 웃는 일 같은. 이곳을 즐기러 온 사람이 아니라 하나라도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놀기 위해 왔는데 계속 계산하고 있었고, 내 뜻대로 안 될 때마다 아이들을 다그치고 있었다. 현황판을 보며 불안해질 때마다 다짐했다.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으리




한 대 갖고 싶었던 EV9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감,

정보를 아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시스템,

어른의 정보력과 스피드가 있어야만 아이가 놀 수 있는 구조.


그런 풍경을 씁쓸해하면서도 어느새 그 안에서 가장 열심히 뛰고 있는 내 스스로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젖은 물미역처럼 반쯤 누워있는 내게 아이가 말했다.

"엄마, 키자니아 너무 재미있었어. 다음에 또 가자."


그래, 너는 너무 좋았구나.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일단 말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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