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높은데 손이 안 따라주네
글 못 쓰는 사람도 좋은 글은 귀신같이 알아본다. 손만 뻗으면 글이 쏟아지는 시대, 의미 없는 글들 사이에서 마음 콕 찌르는 한 줄을 다들 정확히 찾아내니까. 하트를 누르고 공유도 하고 스크린샷도 찍는다. '이건 진짜 내 얘기야' 싶은 문장들은 노트에 손으로 옮겨 적기도 한다.
이 사람들은 대체 뭘 먹고 살길래 이런 문장을 만들어 냈을까, 작가의 손을 통째로 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뇌까지 훔치고 싶은 작가들도 더러 있다.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까워 일부러 천천히 읽기도 하고, 반도 안 읽었으면서 벌써 다음 책을 결제하기도 한다.
자꾸 읽다 보니 눈만 높아졌다. 이게 문제다. 글을 읽는 눈과 쓰는 손의 수준 차이가 커서 글을 도무지 쓸 수가 없다. 이건 바이올린도 똑같다.
내가 바이올린 꺼내면 남편은 조용히 온집안 문을 다 닫는다. 화장실 문을 가장 먼저 닫고 창문과 방문을 차례로 닫는다. 녹슨 쇠파이프 긁는 것 같은 내 바이올린 소리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게 부끄러운가보다. 한번은 정색하고 타박했더니 남편이 손사래치며 말했다. 혹시라도 시끄럽다고 민원 들어오면 앞으로 연습 못할테니까, 내가 바이올린을 오래 켤 수 있도록 선제방어하는 거라고 했다. 일단 알겠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변명 같다. 남편 욕은 아내만 할 수 있듯, 내 바이올린 실력은 나만 부끄러워할 수 있다.
마음을 다잡고 활을 든다. 자꾸만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번에 됐던 게 오늘은 안 된다. 어째 갈수록 실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나의 최고 수준을 유지하려면 차라리 연습을 안 해야 하는 걸까.
내가 은유 작가처럼 글을 쓰고 싶은 건 아니다. 양인모처럼 바이올린을 켜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읽기/듣기 실력과 쓰기/켜기 실력의 간극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싶을 뿐이다. 헌데 글도 자꾸 써야 늘고 바이올린도 자꾸 켜야 느는데, 대가들의 글과 연주가 자꾸 내 연습을 방해한다.
무튼 이건 모두 핑계다. 연습이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