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같이 있어야만 행복한 건 아니니까
아이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을 때였다. 신발 꺼내 놓고 기다리는데 딸아이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엄마! 옥토넛 보러 갈 거지~?!!"
선생님이 웃으며 덧붙였다.
"아침부터 오늘 영화 본다고 얼마나 들떠 있었는지 몰라요."
6살 아들도 날 보자마자 옥토넛 얘기부터 꺼냈다. 옥토넛을 향한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네 개의 눈. 애니메이션 덕후인 아빠를 빼닮았다. 선생님 앞이라 옆에 있던 남편은 아이들의 말에 그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답을 대신했다.
세 사람과 달리 애니메이션에 별 흥미가 없는 나는 사실 옥토넛이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지난번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그림 이야기>를 보러 갔을 때도 온가족이 다함께 처음으로 영화관에 왔다는 기억 뿐 영화 자체에 대한 감흥은 별로 없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좋은 엄마이고 싶었던 난 내가 옥토넛을 봐야만 할 이유를 생각해내고 있었다. 애를 썼지만 아이들과의 추억, 그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문득 남편이 물었다.
"여보는 근처 카페에 가 있을래?"
내 예술적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이다. 내가 옥토넛보단 책을 볼 때 더 행복해할 거라는 그의 확신이 느껴졌다. 감동 받은 표정을 지으며 그래도 되겠냐고, 혼자 괜찮겠냐고 (예의 상) 물어봤다. 괜찮다고 했다. 기쁜 마음을 최대한 숨긴 채 남편과 아이들을 영화관에 데려다줬다.
재빨리 차를 돌려 근처 카페로 달려갔다. 카페 문을 열자 고소한 원두향이 코를 찔렀다. 카페라떼와 스콘 하나를 시키고 창가쪽 1인 테이블에 앉았다. 노트북과 책, 다이어리와 만년필을 꺼내놓으니 저녁을 안 먹었는데도 배부른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3단 튤립이 그려진 정갈한 라떼가 나왔다. 새콤한 라즈베리잼을 바른 스콘이 잘 어울리는 라떼였다.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영화 볼 생각에 신나게 복도를 걷는 아이들, 팝콘을 입에 물고 환하게 웃는 딸의 사진이었다. 아이들이 영화 내용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진 속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의리 없게 혼자 카페로 튄 와이프를 욕하기는 커녕 아이들의 사진을 보내며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덧붙이기까지 하는 남편이 대인배처럼 느껴졌다.
에어팟을 귀에 꽂았지만 음악은 틀지 않았다. 노이즈 캔슬링이면 충분했다. 세상의 소리를 차단한 채 자유를 만끽하며 은유 작가의 문장을 필사했다. 한 구절 읽고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바로 다시 쓰는데도 쉽지 않았다. 그녀의 따뜻하고 세련된 문장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내 글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깨닫는다.
용기 내어 내 글을 막 써보려던 찰나, 창밖으로 작은 물체가 내게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딸이었다. 영화 시작 후 한 시간 남짓 지났을 때였다. "벌써 끝났어?" 드라마도 아니고 영화가 한 시간만에 끝난다는 사실이 황당했지만 아쉬운 마음을 가리려 더 환하게 웃었다. 그 난감한 찰나를 남편이 영상으로 찍었다. 어이없음과 웃음이 뒤섞인 얼굴. 내가 봐도 웃기다.
카페에서 혼자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게 괜히 찔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혼자 카페에 가고 싶은 엄마는
잠 잘 준비를 마친 아이들을 품에 안고 조심스레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