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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지훈 May 13. 2020

철학의 중요성

말을 잘 못하고,

글을 잘 쓰지 못해서


자신의 철학을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런다고 해서 최소한 성인의 경우에

자신만의 세계관이 (철학) 없을 수가 없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이들도 있다. 경험이 부족해서 매우 단순할 뿐이다, 어른에 비해서.


자신의 패러다임들을 (습관적 사고) 세세하게 정리하는 시간,


우리의 기원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


다수가, 대중들이, 가족이 믿는 것이 과연 내 심장이 믿는 것과 일치하는지 알아보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의식이나 알아차림 없이 그저 본능이 내키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동물들이 하는 것이고,

우린 그 훨씬 이상의 지능과 능력을 갖고 있다.


세상의 가치는 매일 변하고 매일 우리의 목덜미를 잡으려고 한다.


자신이 무얼 믿는지 모르면 항상 끌려다니기만 할 것이다.


자연은 진화를 위해 자신 안에 포함된 모든 것들 중 희생양을 언제나 필요로 한다.


필요가 없는 것, 시기에 적절하지 못한 생물체는 조용히 재운다. 공룡처럼.


철학의 잔화가 없는 것은

손전등 없이 동굴을 걷는 것과 같다.


모두가 자기가 맞다고 외친다.


혼란 속에서 따라가기만 하며 이용당할 것인지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 (물론 남의 생각들을 빌려오는 것은 필수이며 피할 수도 없다)


적절하게 상황에 따라 영리하게 바꿔갈지 생각을 해봐야 한다.


  남에게서 전해내려는 것을

눈을 못 뜨는 새끼 새가 어미에게 먹이를 받듯

받을 것인지, 나에게 먹을 것을 준다고 무조건 다 좋은 의도인지 생각을 해봐야 하고,


나에게 오는 세상의 주장들에 대해서 다는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큰 주장부터 조목조목 따져보려 노력해야 한다.


거짓과 사실


혹은


내 안의 진리와

그것과 맞지 않는 것을 구분하는 연습이 평생 가야 한다고 본다.


근육은 놔두면 천천히 퇴보를 하고,

우리의 감정과 두뇌도 근육도 자극과 자극의 부재로 인해 성장하거나 퇴화를 하기 때문에.


인생의 2/3 이상을 어느 정도의 어둠 속에서 보냈다.


아버지를 무척 존경했었기에 그거 하라면 다 했고,

내 영혼이 어렸을지라도 그가 틀렸다고 믿었을 때, 그냥 따랐다. 나중에는 그것도 어려워서 도망을 많이 쳤고, 둥지가 없는 새처럼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무척이나 많이 다쳤다.


지금은 그 시간들이 추억이기도 하고,

내 데이터베이스에 쌓인 지식과 경험이기도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어느 정도의 낭비도 있었다.


내가 느끼는 것과 당시에 수동적으로 따랐던 종교관은 매일 갈등 속에서 살았고,


내 영혼은 그것을 견디지 못해 나중에는 내 머리 안에서 음성이 들리게 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을 너무나 쉽게 '정신분열' 등으로 해석하지 않았으면 한다. 고등학생 때, 스무 살 초반 때 그것이 심해져갔고, 난 미칠 것만 같았다. 밖에 나가서는 멀쩡한 척을 할 수가 없었고, 친구들과 술을 먹다가도 곧바로 집으로 뛰어가야만 했던 적도 많았다. 그 당시의 사진들을 보면 혼란이 눈 속에 고스란히 보였다.


그 소리들은 밖에서 들려오는 외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 갇힌 마음이 취한 채 살고 있던 의식을 깨우려 한 것이었다.


내 마음은 내 세상을 증오했다.


서울이라는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증오,

숨 막히는 자기 검열,

목사에게 요구되는 도덕성의 압력을 견디고 살았던 아버지의 절망.


난 그 속에서 자꾸 눌리고 눌렸다. 나침반이 없었고 진정으로 누구와 내가 느낀 것에 대해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을 실망시키기가 싫었고, 또 그들을 내가 느끼는 혼란과 공포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절대로 날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들이 경험한 세상과 나의 세상이 너무 달랐다는 것을 항상 의식했다.


같이 있어도 따로 있었다.


나한테 나쁘게 행동하는 측근들이 있었을 때

그저 수동적으로 배운 대로 '용서' 해주려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용서가 없었던 적이 너무나 많았다. 그렇게 모르는 척 소파 밑에다가 던진 쓰레기는 쌓이고 쌓였다.


그래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제야 정리가 되어간다.


이 모든 과정과 결론은 내 생각들의 정리를 도와준 지침서가 나름 생겨났기 때문이었고,


난 이제 스스로 생각을 할 줄 알기 시작했다.

(30살 넘어 이런 말 하는 게 웃길 수도 있지만 진심이다.)


여전히 어설프고 여전히 못, 망치, 전기 테이프 등이 필요하다.


원칙은 추상적이지만 한 사람과 한 사회가 혼란에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 지탱해주고, 안 좋은 일이 생길 때 우리가 야만인처럼 행동하지 못하게 잡아주고 구해준다. 또, 신체를 대하는 방법과 돈이 생겼을 때 어떻게 관리를 할지 선생이 되어준다.


돈을 훔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창조주의 유무를 내 안에서 결정하게 해 주고,


'내가 죽으면 어디 가지?'라는 공포가 올라올 때 이미 파 놓은 길을 다시 걷게 해 준다. 그러고 원한다면 또 새로운 선택을 하게 해 준다.


이 글을 읽을 사람들이 얼마나 기가 빨릴지 상상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를 한 문장으로 표현을 한다.


'누구나 자기 배의 튼튼한 닻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닻은 스스로 제작을 해야 한다'


쓰고 보니 두 문장이다.


영원히 이 아름다운 인생의 학생으로서 우리는 살아갈 것이라,


꼭 내가 한 때 겪었던 것을 겪지 않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내 안에 소리를 듣고 해석해나가자.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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