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동안의 고독>/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코로나로 전 세계가 힘들었던 2020년, 특히 3월은 나에게도 그 어떤 날 보다 혹독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위기 상황에서 모국이 아닌 외국에,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의 신분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만 같았다. 꽃들이 기지개를 피려던 춘삼월, 독일은 국경을 봉쇄했고 외국인 입국을 제한했다. 마트와 약국, 일부 은행을 제외하고 모든 회사와 기관, 상점, 레스토랑들이 문을 닫았다. 봄이면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던 거리에는 황량한 먼지만이 흩날렸다. 코로나는 살랑이는 봄바람마저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한인회에서는 귀국 수요 조사를 했다. 마음은 이미 고국에 가 있었지만, 일정 상 당장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독일에 남는 편을 택했다. 집 밖에 나가지 않고 버틸 때 까지 버티는 것이 유일한 방역이었다. 괜찮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불안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날이 기세를 뻗쳤다. 만에 하나 잘못되어서 코로나에 걸린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의료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인터넷으로 별의별 기사들을 다 검색했고, 하루에도 수십 번 코로나 확진자 수를 체크했다. 죄다 나쁜 상황들뿐이었고, 이도 저도 못하는 완벽한 고립감에 함몰되었다. 두려움으로 잠 못 이루는 날들이 이어졌다.
갈피를 못 잡고 전전긍긍하는 나를 일으켜 세워 준 것은 사람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지속적으로 연락을 해왔고, 초조해하는 나를 다독여주었다. 익숙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면 요동치던 파고가 조금은 가라앉았다. 한국도 안전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나 역시 그들을 심려했다. 같이 뭉쳐서 불안의 구름을 걷어내려 노력했다. 코로나의 확산과 흑색선전, 가짜뉴스, 온갖 유언비어들이 난무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지만 ‘덕분에 챌린지’를 비롯해 보통 사람들이 가진 선의 의지가 승리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누구도 혼자서 재앙을 이겨낼 수는 없다. 국난을 극복하는 근간은 ‘함께’였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인간이 동행이 아닌 고립을 선택했을 때, 한 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부엔디아 가문을 통해 보여준다. 근사한 제목만으로도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 책은 전체적인 맥락이 창세기와 같은 흐름을 보이고 있어, 현대판 창세기로 불리기도 한다. 상상 속 마을 마콘도를 세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 집안을 주축으로 7대에 걸친 역사가 전개된다. 너무 긴 이름들이 반복해서 나오기에 책 맨 앞부분에 있는 가계도를 수 십 번 오가야 하지만, 이야기가 주는 힘은 그 수고로움을 가뿐히 이겨내고도 남는다.
대 서사시는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슬라의 결합으로 시작된다. 처음 그들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 친척들은 반대했다. 근친상간은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예언은 운명적 사랑을 막지 못했다. 두 사람은 결혼했고 훗날 우려는 현실이 된다.
한동안 부엔디아 가문이 일구어 낸 마콘도는 천국이었다. 지상낙원이었던 이곳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차, 기차와 같은 현대 문물이 들어왔고 관공서, 회사. 기관들이 생겨난다. 마을사람들은 조금씩 문명에 눈뜨는데, 무엇보다 마콘도를 완전히 바꿔놓은 것은 외국인에 의해 세워진 바나나 공장이었다. 외국 자본은 장밋빛 전망과 달리 무자비하게 노동력을 착취했고 노동자들은 이에 투쟁하다 소리 없이 학살당한다.
바나나 기업의 횡포는 1928년 12월 6일 콜롬비아에서 발생한 ‘시에나가 대학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시 스페인으로부터 가까스로 독립을 쟁취한 콜롬비아였지만 외국 기업과 군부 독재의 결탁은 정국을 더 혼탁하게 만들었다.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자 정부는 이를 강제 진압 하면서 엄청난 사람들을 학살한다. “5분 안에 구역을 깨끗이 비우라”는 명령을 받은 군부대는 기관총을 난사했고 사상자 수는 아직도 엇갈린다. 죄 없는 사람들이 피로 물들어갔다. 평범한 시민이 군부독재에 의해 희생당한다는 서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법대를 중퇴하고 기자로 일했던 마르케스는 유럽, 미국 등에서의 특파원 생활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이후 18개월 동안 칩거하며 하루에 8시간씩 집필에 매진해 조국 콜롬비아가 겪은 비극을 <백 년 동안의 고독>에 담아냈다.
외세의 침입은 오랫동안 쌓아올린 공동체를 무너트렸고 개개인을 고독에 빠트렸다. 마을 사람들은 빠른 속도와 편리함으로 무장한 문명의 이기에 흡수되어 타락한다. 무분별한 개발에 신은 분노했다. 4년 11개월 2일 동안 대홍수가 이어지면서 마을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쉼 없이 내린 비는 탐욕스러운 문명을 쓸어갔다. 거의 5년 가까이 비가 내린다는 기발한 상상력과 감각적인 표현은 읽는 이의 감성을 장맛비마냥 두드린다. 비가 많이 와서 습해진 집안을 ‘물고기들이 집안에 들어와 헤엄을 치는 바람에 공기가 눅눅해졌다’로 표현하는 글쓰기 방식은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독특한 장르를 만들어냈다. 이외에도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장례식 날 노란 꽃비가 내리고,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였던 레메디오스가 침대를 타고 하늘로 사라지는가 하면, 돼지꼬리가 달린 아이가 태어나는 비현실적인 일들은 마술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소설 전체가 다 꿈으로 일단락 될 것 같은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이 환상적인 사건들 가운데 유일한 진실은
마콘도에 사는 모든 인물들이
‘고독’했다는 점이다.
아우렐리아노는 자식을 18명이나 낳았지만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고, 아마란타는 청혼을 거절하고 평생 혼자 살다가 자신의 수의를 직접 짜서 스스로 죽음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그들은 소통하지 않았다. 타인을 배려하지도 않았다. 세상만사를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했고 스스로 벽을 만들고 그곳에 갇혀 살았다.
외로운 가족들의 중심을 잡아주는 유일한 사람은 어머니 우르슬라였는데, 마콘도에서 가장 오래 살며 모든 희극과 비극을 지켜본 장본인이다. 연금술에 몰두하던 남편은 정신 이상으로 밤나무에 묶여 지내다 사망했고, 연이은 자식들의 죽음을 목도해야했으며, 엄마 혹은 아빠를 잃은 손자들을 돌봐야했다. 집안의 기둥과도 같았던 대모(大母)는 항상 누군가를 살피는 입장이었기에, 마찬가지로 본인은 고독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부엔디아 가문이었지만, 계시대로 돼지꼬리 달린 아이가 태어나면서 멸망한다.
부엔디아 가문 사람들이 고독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사랑을 몰라서였다. 그들이 아이를 낳는 과정은 대부분 본능적인 욕구에 의한 것이었지 사랑의 결실이 아니었다. 대가 이어질수록 줄어드는 자손의 수가 이를 증명한다. 타인의 불행을 외면했고 폐쇄적인 사회에서 도전과 열정 없이 살다가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다. 고독의 결말은 자멸이었다.
고독이 의미하는 바는 다양하지만 이 책에서의 고독은 ‘개인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인간은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 아니다. 사랑할 수 없어서 외로운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각자 외로운 섬이 될 때, 타인의 불행에 눈감을 때 공동체는 무너진다. 마콘도 사람들은 이 고독의 악순환을 끊지 못했다.
백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고독의 시대를 살고 있다. 1인 가구는 나날이 증가하고,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젊은이들에게 사랑은 사치가 되었으며, 메마른 감정은 폭력의 시대를 양산했다. 어떤 이의 억울함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눈감아 버리기 일쑤였다. 지독하리만치 고독한 개인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결국 다시 사랑 아닐까.
독일어에는 ‘고독한’을 의미하는 형용사로 ‘아인잠(einsam’)이 있다. 이 단어에서 아인스(Eins)는 숫자 1을 의미하는데, 숫자 2인 쯔바이(Zwei)를 대입하면 ‘쯔바이잠(zweisam)’, ‘둘만의’이라는 로맨틱한 단어로 변신한다.
즉 ‘고독’은 ‘사랑’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백 년 동안의 고독>은 고독을 통해 사랑을 말한다. 우리는 한없이 고독해봤기에, 한없이 사랑할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극복하는 힘도 하나가 아닌 둘 일 때만 가능한, ‘사랑’이라고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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