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생활자KAI Apr 06. 2023

며칠 밤을 울면서 쓴 고(故) 김현식 특집

글에 담긴 진심은 통한다

    

 “작가님 또 울어요?” 

그 당시 나의 별명은 ‘울보작가’였다. 자꾸 눈물이 났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나 자신도 이해가 안 됐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집에서 대본을 쓰다가 울었고, 사무실에 나와서 인터뷰를 하다가 울었고, 그의 노래를 찾아 듣다가 또 울었다. 돌이켜 보건데 내 인생에 그렇게 울면서 쓴 대본은 유일무이했다. 지금도 그의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자니 또 눈물이 난다. 첫 소절의 낮은 바이올린 소리에 얹어진 임종 직전 술에 취해 타 들어가는 듯한 그 탁성은 언제 들어도 처연하다. ‘내사랑 내곁에’를 외치던 그는 지금 우리 곁에 없다.      

 김현식을 미치게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다. 사실 내 세대는 서태지, 토이, 김동률의 감성에 가깝다. 내가 아는 그의 노래라고는 가끔 비 오는 날이면 라디오 신청곡으로 자주 들어왔던 ‘비처럼 음악처럼’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특별한 기획은 아니었다. 계절처럼 찾아오는 연례 특집 중 하나였다. 유난히 11월이 되면 생각나는 가수들이 있다. 쓸쓸한 계절에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버린 사람들. 유재하와 김현식. 공교롭게도 똑같이 11월 1일에 나란히 가버린 두 사람. 그래서 작년엔 유재하였고 올해는 김현식이었다. 물론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은 있었다. 관련 특집이며 다큐멘터리는 차고 넘쳤으니까.      

 그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음악을 들어야 했다. 리듬은 대부분 심플했다. 아주 단순한 선율인데 그 선율을 넘나드는 목소리는 단순치 않았다. 힘이 있었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 심지어 빠른 비트의 음악마저 사람을 아릿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물론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한 일주일을 매일 같이 음악을 듣고 자료를 찾고, 이어서 주변 사람들을 만나보기 시작했다. 강인원, 권인하, 김종진, 김중만... 김현식의 친구들. 그중에는 섭외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었는데 김현식 특집이란 말에 하나같이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 주었다. 누구도 거절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다. 대체 김현식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잘은 모르지만 좋은 사람임에 분명했다. 남은 이들이 증명해 보이고 있으니까. 남아있는 그들은 하나같이 음악에 진심이었던 김현식을 회상했다. 덧붙여 ‘술’.      


음악과 술밖에 몰랐던 사람

술만 안 먹으면 천사였던 사람

요구르트 병에 술을 넣어서까지 마셨던 사람

 

 친구들이 기억하는 김현식은 음악과 술이었다. 나는 술을 거의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는 날이면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하도 그런 말을 들어서인지 그의 짧은 삶이 고달프게 느껴져서인지 대체 술이 뭐길래 그토록 마셔댔는지 궁금했다. 그때 처음으로 대본을 쓰면서 술을 마셔봤다.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었다. 절실히. 내가 아무리 애쓴들 절대 그에게 가닿을 수 없겠지만,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불렀는지 느껴보고 싶었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매주 해치우듯 글을 쓰던 나는 실로 오랜만에 대본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음악에 누가 되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살아있었기에.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만약 내 남편이 매일 이렇게 술을 먹고 음악에 미쳐 있다면 과연 그와 같이 살 수 있을까? 대중은 음악에 환호했을지 몰라도 정작 같이 사는 사람은 지옥 아니었을까. 한 뮤지션의 삶과 노래가 곧 내 삶이 되는 것은 어떤 심경일까. 아내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그 질문으로부터 아내와 남편 김현식, 두 사람의 시점으로 구성 한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시점을 주인공 한 명이 아닌 둘로 나눈다는 발상이 꽤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략적인 구성안이 잡히고 내레이션을 쓰기 시작했다. 음악을 다시 듣고 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때까지 샤워할 때도 그의 음악을 계속해서 플레이했다. 동시에 쓰고 지웠다 쓰고 지웠다를 반복하며 며칠 밤을 지새웠다. 단 한 번도 음악을 향한 달음질을 멈춘 적이 없던 사람, 복수가 차올라 병원에 누워있을 때도 쓰다만 곡이 걱정이었던 사람, 중단된 녹음이 문제였지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사람, 깊은 밤, 그 처연했던 시간 속 그 사람을 기억하며 기록하는 마음으로 써내려갔다.

 눈물로 쓴 대본의 더빙현장도 눈물바다였다. 내레이션을 맡았던 아나운서도 성우도 울었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더빙실에 가지 않는데, 피디는 녹음하면서 처음으로 엔지니어들로부터 대체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당시 황을 전했다. 특집은 SBS사내 평가와 시청률 모든 면에서 꽤나 성공적이었다.      

 그때의 나는 김현식이란 사람에게 미쳐 있었다. 작가료를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심히 했냐고 묻는다면 뚜렷다할 이유를 댈 수는 없다. 막연히 살아있는 그의 친구들이 선뜻 인터뷰에 나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부연하자면 나는 약간 다른 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끌리는 편이다. <언제나 그대 내 곁에>는 1988년에 발매됐다. 그 당시 88올림픽으로 한창 들떴을 대한민국 한복판에, ‘세상은 외롭고 쓸쓸해’를 읊조리던 사람이 있었다. 풍요 속 고독을 느꼈을 그 한 사람에게 나는 지극히 인간적인 유대를 느꼈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다른 시공간의 사람에게 매료됐다.      




 음악을 향한 사랑이 버거웠던 가객... 


그 이후에도 수많은 특집을 했다. 그렇지만 김현식만큼 말 그대로 내 영혼을 갈아 넣어 쓴 대본은 없었다. 뻔한 말이지만 진심은 실패할 수 없다. 글에도 진심이 있다. 그 진심은 크든 작든 진가를 드러낸다. 몇 번을 썼다 지웠다를 했는지 세세히는 몰라도 얼마나 정성들여 썼는지를 독자는 느낄 수 있다. 좋은 글은 대상을 향한 ‘애정’으로부터 비롯된다. 다음 글은 이 사실을 확실히 증명해 보인다. 


 “아이를 보면서 비로소 내가 어떤 시간들을 통해 성장했는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것처럼 상상할 수 있었다. 태어나서 한 달 보이지도 않는 상태로 누워서 공룡소리를 내며 누워있다가, 겨우 목을 들고, 끊임없이 뒤집기를 한다. 어느 날은 넘어질 거라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우뚝 서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간다. 세상을 관찰하지만 소통하지는 못 한다. 그러다가 한참 지난 어느 날은 다른 아이에게 “같이 놀자.” 라는 말을 하는 아이를 보았다.”     


 다독이는 글쓰기를 함께 하신, 아이를 키우는 학인 분의 글이다. 공룡소리를 내며 누워있던 아이가 세상과의 소통을 시작하는 과정이 따뜻하고 경이롭다. 아이에 대한 애정 없이는 절대 나오지 못할 글이다. 아지렁이가 일렁이듯 꼬물꼬물한 생명이 세상에 나와 걷고, 말을 하고, 관계맺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에세이라는 장르 자체를 처음 써 본 분이지만 이 글은 사람의 마음을 동하게 한다. 대상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파생된 글이기 때문이다. 모든 훌륭한 글은 사랑이 낳는다. 세상은 자주 외롭고, 잊혀질만하면 쓸쓸해 지지만, 사랑으로부터 나온 그 글이 우리를 조금은 덜 외롭고 덜 쓸쓸하게 만들어준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판사를 사로잡는 투고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