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와 주호민 씨 사건을 보며...
작년부터 올 4월까지 대교와 함께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아이들을 가르치긴 하지만 교육용 프로그램은 또 다른 문제라 새로운 분야를 알게된 기쁨도 있었고, 전혀 몰랐던 세계에 눈 뜬 계기가 됐다.
주제가 ‘경계선 지능장애’였는데, 부끄럽게도 지금껏 나는 이런 장애 자체가 있는지 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여기서 ‘장애’라는 지칭역시 다소 애매하긴 하다. 아직 우리사회에서는 '경계선 지능 장애', '느린 학습자' 등 정확한 용어조차 정리되지 못했다. 즉 특수 교육에대한 의식 자체가 이제 막 퍼지기 시작했고 각종 조례나 제도들이 만들어 지는 과도기 단계에 있다.
느린 학습자는 아이큐 71~84 정도의 지능지수를 의미하는데, 놀랍게도 전체 학생의 10%~13%를 차지한다. 흔히 말하는 지적장애에 해당되는 지능지수는 IQ70이하를 일컫는다. 즉 70이하에 해당되어야 지적장애로 등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경계선에 있는 아이들은 일반 학교를 가는 경우가 대다수고, 여기서 여러 충돌이 발생한다. (오히려 느린 학습자 부모들은 지적장애 판정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래야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특수 학교 입학등이 가능하기 떄문이다.)
사실, 서이초 선생님 사망 사건과 주호민 자녀 논란을 보면서, 교사의 인권과 학부모의 갑질도 문제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점은 대상이 된 아이들은 특수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이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었다. 진짜 국가에서 나서서 해야 할 일은 특수 교육에 대한 지원 확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권에서는 처음엔 학생 인권 조례 강화가 문제라고 하더니 선회에서 요즘엔 선생님들의 인권 조례를 강화하겠다며, 국가에서 선생님을 보호하겠고 나서지만 사실 이 논리라면 경찰, 공무원, 학생, 의사, 변호사, 배달원... 보호하지 않아야 할 국민이 있을까? 국가가 국민이 보호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보다 실질적으로 선생님들이 교육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아이들이 교육받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한국은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특수교육 대상 아동은 2013년 8만6633명에서 지난해엔 10만3695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일반학교의 경우 특수교사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고 많아야 1명인 경우가 대다수다.그렇다보니, 주호민 씨 자녀의 학교도 해당 선생님이 없으니 현장은 난리가 날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특수교사의 경우, 나야 방송을 통해 잠시 만나봤지만, 정말이지 극한 직업이다. 경계선 지능 장애라는 것은 단순히 지능이 낮은 것은 뿐만 아니라 폭력성, 혹은 반대의 과도한 행동이 여러 가지 패턴으로 나타난다. 또 경계선 지능 장애와 adhd가 같이 나타나기도 하고, 파생되는 형태는 아이들마다 달라서 연구 분야 역시 치밀하게 이뤄지고 만만치 않음을 알았다. 더 막막한건 이 선천적인 낮은 지능은 정상 지수까지 끌어올리는게 쉽지 않고 교육이 필요한데,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그 당시 특수 교사로 교직에 있으면서 경계선 지능 장애아를 입양하신 선생님을 만나적이 있다. 이 분의 심장은 두 개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들 정도로 교육에도 아이의 양육에도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일선 학교 뿐만 아니라 특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사 선생님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소위 사회에서 전문직 종사자라고 일컫는, 변호사, 의사같은 직종의 학부모들은 자녀의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거다.
'내 자식이라면 절대 이럴 수가 없어!' 라는 자기부정이 강하게 깔려있다. 물론 방송 때 선생님도 얘기하셨다. 자신도 오랫동안 관련 공부를 했고 교사가 됐지만 우리 아이가 경계선 지능 장애라는 말에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이건 본인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라고 말이다.
여기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신이 받는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선생님에게로 향할 때 발생한다. 선생님이 뭘 안다고 확언 하시냐, 검사 제대로 하신거 맞냐, 급기야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배웠다... 이런 힐난으로 이어지고 다른 병원이나 센터를 다니며 장애 판정을 받지 않기 위한 병원 쇼핑을 시작한다. 그러다 결국 다시 센터를 방문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거다. 엄연히 전문 분야가 존재하지만 그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물론 당연히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매일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아이를 사랑으로 양육하는 부모님들이 훨씬 많다. 그 분들의 눈물을 보는데 차마 나 역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학부모들이 학교에 바라는 1순위는 인성이라고 한다. 학업 성적은 상담 하지 않는단다. 어차피 사교육 하니까. 주로 인성상담을 원하는데, 사실 인성은 가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이런 요구가 많고 더군다나 학교폭력 등의 문제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다보니 학교에서는 저학년을 상대로 마음 신호등 수업을 한다. 신호등이 빨강, 주황, 초록으로 바뀌듯 우리 마음도 바로 빨갛게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주황색, 잠시 기다리고 생각하는 순간이 필요하다고. (이 마음 신호등은 학부모에게 필요한 것 같기도...)
선생님들은 애쓰고 계시지만 교육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고 사회 인식역시 부족하다.
해외의 경우는 특수교육은 이미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slow learner 라고 해서 관련 연구가 이뤄지고 있고 지원역시 다양하다.
핀란드는 초등이전부터 기초학습부진을 나타내는 모든 이들에게 특수교육과 같은 강도 높고 전문적인 교육서비스를 지원한다.
독일은 베를린에 돈보스코(Don Bosco)라는 곳이 있다.
경계선지능 청년 자립을 지원하는 교육기관으로 교육과 치료를 함께하고 가정방문상담, 교육, 직업체험을 함께하고 있다. 다양한 목공, 금속, 미술 분야 등 다양한 직업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 아이들의 취업을 돕는다.
우리나라도 2022년에 특수아동 지원조례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아직 걸음마 상황이다. 초등 저학년 때 잠깐 교육이 진행되다 흐지부지 해진다. 이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떻게 이 사회에 적응을 하며 살아갈지도 걱정이다.
ebs <위대한 수업>에서 피터 포나기 교수는 특수 교육이 필요한 아동들에게는 왜(why) 그랬냐? 가 아니라
무엇(what)을 느꼈냐? 를 물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결과론 적인 얘기지만 부모들이 아이들에게도 선생님들에게도 우리 아이한테 왜 그랬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그런 행동을 나오게 했느냐고 물어봤더라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새로운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에는 잘 해낼 거라는 믿음과 행여나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교차한다.
새로운 세상으로 온 아이를 이끌어 가는 선생님 역시 고민은 마찬가지일 터.
간혹 엄마는 기다리는데, 아이는 걸어가고, 아이는 멈춰 있는데, 선생님은 뛰어갈 수도 있다.
느린 학습자 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은 다 속도가 다르다.
그 속도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것,
다른 아이의 속도도 느릴 수 있고 혹은 빠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
‘다음’을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하다.
정말 요즘 교육 현장을 보면 과연 ‘다음’이 있을까? 그 ‘다음’은 뭘까? 막막해진다. 교육은 ‘다음’을 위한 것인데 말이다.
과연 이런 글을 쓸 만한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조심스럽게 생각을 써본다. 혹시 영상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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