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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Feb 20. 2022

샤넬을 사고 싶지 않은 이유

feat. 호모 컨슈머리쿠스의 딜레마.



우리 부부는 결혼할 때 예물, 예단을 비롯해 일체 어떤 사치품을 주고 받지 않았다. 연애할 때도 프러포즈받을 때 받은 목걸이 외 그에게 어떤 고가의 선물을 받아 본적이 없다. 사실 내 경우 누군가에게 대가없이 비싼 물건을 받는게 탐탁치 않게 여겨져서 구남친들에게도 가방을 받아 본적은 없다. 굳이 값나가는 선물을 주고 받으며 연애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모름지기 받으면 응당 그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나도 해줘야한다는 평소 생각 때문에 뭘 사달라고 해 본적도 없다. 모름지기 내돈내산이 제일 편하다.

그런 나에게 가방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으니.


남편이 지난 독일 생활에 대한 고마움으로 가방을 선물 하겠으니 가격을 고민하지 말고 사고 싶은걸 사라는 지령을?!  내 평생 마지막 기회 일 것 같은데?! 이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눈에 불을 켰다. 손가락을 까딱까딱. 요즘 매일 네이버, 구글, 유트브 등 각종 검색에 가뜩이나 없는 시간을 쏟아부었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델보, 셀린느….


그러기를 며칠, 어느 순간 이런 내가 매우 한심해 보였다. 대체 이 따위 가방이 뭐라고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 이 시간에 책을 한 줄 더 읽을텐데; 게다가 장고 끝에 고른 후보는 사기도 어려웠다. 결국 내가 원하는 가방을 살 수 없다면 그것은 내가 살만한 조건이 안 되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진짜 그 가방에 걸맞는 소비자라면 힘들이지 않고도 쉽게 살 수 있을텐데. 현타가 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래도 사자 vs 부질없다의 갈등이 밀물과 썰물처럼 오갔다. 내 마음엔 자주 파도가 일었고 자괴감이 포말처럼 부서졌다.




그러던 찰나에 지난주 합평반에서 낭독 된 한 학인 분의 글은 내 마음을 끌었다. 과거 비싸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지만, 물질이 아닌 노을, 그림을 그리는 어머니의 모습같은 어떤 무형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끼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남편과 산책 중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노을처럼 모두에게 공평한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왜 그게 잘 안될까.”


“음… 내 생각에 너는 노을을 보면서도 에르메스를 떠올릴 것 같은데? ㅋㅋㅋㅋ”


“야!!!!“


“강가희가 부릅니다. 이문세의 붉은노을��”


“(완전히 틀린말은 아니어서 부글부글)”


“근데 넌 샤넬은 갖고 싶단 말 안하더라?”

“내 취향이 아니야.”




나는 평소에도 많은 여자들의 워너비라는 샤넬이 딱히 예뻐보이지 않았고 갖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다. 게다가 보부상인 나에게 대부분 작은 사이즈가 예쁜 샤넬은 비실용적이었다.


방송국에서 일을 하다보면 아나운서, 연예인 등 고가의 가방을 메고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게된다. 그 중 가장 흔한 것이 샤넬인데, 아나운서들 같은 경우 대부분 맞추기라도 한 듯 샤넬 2.55클래식 검정을 기본으로 소유하고 있고 별도로 유색을 하나 더 갖고 있었다. 아나운서라면 응당 샤넬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모종의 규칙 아닌 규칙, 누가 얼마나 고가의 가방을 가지고 출근하느냐를 경계하는 그 이상한 리그가 불편했다.


비싼 샤넬이 점점 대중화되면서 이제는 예물백이 되어 버렸고, 결혼식에 가면 최소 3명 이상은 샤넬 백을 든 하객을 볼 수 있다. 나역시 지극히 물욕적인 사람이고 가방도 좋아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부는 샤넬에 대한 광풍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오픈런에 맞춰 백화점에 가서 표를 받은 뒤 8시간을 기다려 샤넬백을 구매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순번이 되면 매장에서 카톡으로 연락을 주는데 이 마저도 10분 내로 입장 안 할 경우 캔슬된단다;;; 원하는 무언가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역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왜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열광하게 됐는지, 샤넬을 사는게 어렵게 된건지 잘 모르겠다. 코로나로 인한 보복심리로 정의하기엔 더 복잡한 심리가 깔려있는 것도 같다.  (독일의 경우 백화점 오픈런 개념은 없다. 물론 예약을 하면 좀 더 빠른 서비스를 받을 수는 있지만 ... 오히려 베를린에 사는 지인에 의하면 루이비통 매장만 늘 줄이 서 있고 다른 매장은 대부분 예약없이 출입이 가능하다. 물론 원하는 물건이 없을 수 있다. 그렇지만 독일에는 아직도 샤넬을 잘 모르는 30대 남성도 존재한다. 정말이지 명품에 관심없는 나라다.) 더욱이 최근 샤넬의 행보는 매우 실망적이다.


1. 기습 가격 인상

샤넬은 1년에도 몇차례 가격을 인상한다. 아무리 물가 상승, 코로나 상황을 반영한다고 해도 해도해도 너무 한다. 무조건적인 몸값불리기는 납득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에르메스처럼 1년에 1번 10%인상이 합리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2. 발전없는 디자인

샤넬백을 새롭게 재해석한 칼 라거펠트의 보이백 이후 솔직히 샤넬의 히트작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 19백, 가브리엘 등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고만고만 재탕같은 느낌. 혁신이 부재하다고 할까. 그런데 가격은 계속 올라간다.



3. 환경 및 동물 학대 논란

샤넬의 환경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최근 샤넬 패션쇼에 말이 등장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심지어 말은 불빛에 매우 민감한 동물이란다. 아무리 이슈몰이를 하고 싶었다고 할지라도 말을 패션쇼에 굳이 등장시킨 이유가 있을까. 말그대로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이다. 국제동물보호단체 PETA은 "말은 캣워크에서 올라타는 액세서리가 아니"라며 샤넬쇼에 분개했다. 동물을 사랑했던 칼 라거펠트가 알았다면 무덤에서 뛰쳐나올 일이다.


4. 높은 장벽을 가장한 불편한 서비스

샤넬은 온라인에서 코스메틱, 향수 등만 구매 가능하다. 가방, 신발등은 볼 수가 없다. 코스메틱을 열어 둔 이유는 가장 수익을  쉽게 올릴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패션 프로그램을 집필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발망 출신 디자이너가 명품 매출에 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명품들은 비싼 가방을 판매해서 돈을 버는게 아니란다. 오히려 가방은 가죽 자체의 원가 자체가 고가일 뿐더러 숙련된 장인들의 인건비까지 고려하면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 그럼 어디서 수익을 내냐? 바로 화장품과 향수다. 코스메틱은 원가가 매우 저렴하다. 특히 증류수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향수는 전체 수익의 일등공신이다.(결국 물이니까) 코코샤넬 여사가 2차 세계대전 후 샤넬 넘버5 향수의 수익 배분을 두고 소송을 낸 것만 봐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지타산이 좋은 코스메틱은 포기할 수 없으니 온라인에서도 장사를 한다. 대신 그외 물건은 구경도 힘들다.  홈페이지가 매우 불편하게 구성되어 있다. 진입 장벽이 높다는 이미지를 심고자한 마케팅인 것 같은데 아무나 구매를 못하는 명품과 구매가 불편한 명품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온라인 시대, 더욱이 코로나 상황 속에서 이런 폐쇄적인 행보는 구태적으로 보인다.


 샤넬이 에르메스를 따라서 좀 더 하이앤드로 비상하려다 방향을 잘못잡은 느낌이랄까. 이건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렇다고 샤넬 구매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패션피플을 사랑한다. 취향에 맞게 구매 여력에 맞게 사는게 잘못된 것은 아니니까. 다만 요즘 샤넬의 행보에 실망을 느낀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싶다.


여러 논란을 낳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샤넬은 여전히 인기가 높다. 리셀, 오픈런, 집값과 가방값은 오늘이 제일 저렴하다와 같은 말들이 구매심리를 더 자극한다. 왜 그럴까?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패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패션은 개인적 동기가 아니라 사회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 상류계급이 하류계급,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중간계급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지으려는 노력이 바로 패션을 구성한다. 패션은 끊임없이 해체되기 때문에 항상 새롭게 세워지는 장벽이며, 이를 통해 상류세계는 중류사회와 스스로를 차단시키려고 한다. 그리하여 신분상의 허영심이 쳇바퀴 돌 듯하는 현상이 무한대로 반복된다.

이 글을 읽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저릿했다. 숨기려 했던 폐부를 들킨 것만 같다. 부자들은 중간 계급이 올라오는 것을 경계한다. 선을 긋고 벽을 치고 싶어 한다. 그럴수록 중간 계급들은 어떻게 해서든 또 올라가고 싶어 한다. 샤넬이 흔해져서 진짜 부자들은 샤넬을 안 산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 아슬아슬한 사다리타기에서 결국 이득을 보는 건 명품 기업들이다.


명품은 환상을 판다. 내가 이 가방을 메면 마치 상류층처럼 보일 것만 같은 기시감, 멋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 (최근 불거진 프리지아 사건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한다.)가방 하나 가진다고 내가 과연 상류층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롱샴 가방을 들고 다녔다는데 내가 뭐라고; 정신 차려라.사실 그 환상 마케팅에 놀아나면 안되지 하면서도 예쁜 걸 보면 사고 싶다. 그것이 값나가는, 역사가 오래된 그 무엇이라면 더더욱 갖고 싶어진다. 모두에게 공평한 아름다움의 가치가 빛나는 세상은 명품 만큼만큼이나 신기루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번쩍거리는 것이 넘처나는 자본주의 시대에는 더욱더...  이 글을 쓰면서도 가방 검색을 끝내지 못한다. 호모 컨슈머리쿠스의 딜레마다.








에르메스고 샤넬이고 노을을 볼까요? 겨울에 더 아름다운 독일의 노을 함께 감상해요. 물론 무료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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