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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생활자KAI Oct 30. 2020

우리가 8,500km라는 거리에 떨어져 살지라도..

“딸 엄마가 용돈 조금 보냈다.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거 망설이지 말고 사 먹고 사 입어

하고 싶은 거 너무 참지 말고 예쁘게 살아 “


아침을 먹고 10시 즈음됐을까. 엄마한테서 문자가 왔다. 아무 날도 아닌데 뜬금없이 용돈을 보내신 거다. 독일로 온 이후 나는 자랑스러운 딸에서 안쓰러운 딸이 됐다.

 엄마는 온종일 내 걱정뿐이었다. 밥은 잘 먹는지, 신변에 이상은 없는지, 비가 자주 오는 날씨 탓에 우울하진 않은지 대화의 90%가 걱정과 안부였다. 아무리 현재 우리 부부가 독일에서 반 백수라지만 용돈을 드려도 모자랄 판에 차마 받을 수는 없었다.


“엄마, 나도 돈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다시 고스란히 엄마 통장으로 계좌 이체를 했다.


“왜 돈을 다시 돌려보내는데?

너는 엄마 마음을 진짜 몰라준다.”(힝....)


“엄마 부자야?”

“딸 몰랐어? 엄마는 마음 부자란다.”(씨익)


마음부자.


단 네 글자에 엄마의 인생철학이 모두 담겨 있었다. 대체 얼마나 마음이 부자인 것일까. 부의 가치로 따진다면 그것은 도무지 셈할 수 없는 무한대의 숫자였다. 나는 무한한 엄마 사랑을 한껏 받고 자랐으며 먹고 먹어도 모자라 계속해서 베어 먹고 있었다. 신기한 건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 체하지도 않는다. 금방 소화를 시키고 또다시 입을 벌렸다. 좀처럼 고갈되지 않는 마음 부자는 마찬가지로 그렇게 줬는데도 더 주지 못해 안달이었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은 어떤 공식으로도 풀지 못할 미제의 셈법이었다. 잠시 내가 찡-해져 있는 사이 다시 ‘카톡-’.


이번엔 사진을 첨부했다. 연등이었다. 어제 절에 가서 딸과 사위 잘 되라고 소원을 빌고 왔다고.


“엄마! 엄마는 진짜 부자야? 왜 쓸데없이 그런데 돈을 써?

부처님이 소원 들어줄 것 같아?”


“니는 엄마를 바보로 보나? 부처님이 언제 적 사람인데 아직까지 믿는데? 그냥 기도하는 거다. ‘기도’. 너네 잘되라고 항상 생각하는 거야. 마음의 등불도 모르나? 작가님이 센스가 없네. 빵점이다 빵점!”


그랬다. 난 정말 감각이 없었다. 평소에는 온갖 감상적인 척 다하면서 왜 항상 엄마 앞에서는 감정을 주머니에 숨기고 잔소리만 해대는지 도통 모르겠다. 연등 사진을 손가락으로 더듬어 봤다. 확대해서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수많은 글자 속에 조그마하게 남편과 내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이 시인이라면 이 종이 한 장 속에 구름이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구름이 없으면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나무가 자랄 수 없습니다.
나무가 없으면 우리는 종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달라이 라마가 종이 한 장에서 구름을 봤다면, 나는 작은 연등에 적힌 까만 글자들 속에서 엄마를 봤다. 마음 부자 엄마가 없었다면 나는 태어날 수 없었을 테고 내가 없었다면 엄마는 매일 자식 잘되라고 기도하시지 않아도 됐을지 모른다. 저렇게 연등을 단다고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지 않는다. 다만 매일 자식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은 절대적으로 믿는다. 소원이 이뤄지는 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그 간절한 마음에 대한 보상이 아닐까.


저 연등 속에서 엄마의 마음이 반짝거린다. 나는 그 반짝거림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다. 걸어서도, 자동차로도 갈 수 없는, 오직 비행기에만 의지해서 갈 수 있는 8,500km라는 어마어마한 거리에 떨어져 살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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