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계획한 날,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1년에 한 번씩 둘이서 여행을 가자고. 당시엔 둘 다 싱글이었고 젊었다. 여자 둘이서 1년에 한 번 여행을 간다는 것. 물론 남자들도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겠으나 여자라는 대한민국 구성원에게는 더 힘들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그땐 미처 못했다. 앞으로 결혼과 육아 등의 명제들이 얼마나 우리의 발목을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못가는 핑계보다는 가야할 구실을 찾기로 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행복에는 이유가 없지만 불행에는 이유가 참 많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
여행도 대입해보면 마찬가지다. 못가는 데에는 이런저런 이유가 많지만 가야하는 이유는 하나다.
“지금 떠나야 하니까”
떠나는 행위 그 자체가 여행의 이유이자 목적이다. 정지용 시인은 여행의 즐거움을 “이가락(離家樂)”으로 표현했다. 집 떠나는 즐거움.. 오래된 집이 주는 편안함도 좋지만 그 익숙함을 떠났을 때의 일탈 역시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을 준다. 물론 20대에 집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혼자서 참 많은 곳을 다녔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 맞는 친구와 그것도 한 달씩이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금껏 여행 짐을 싸면서 이토록 즐거웠던 적은 없었다.
전혀 가보지 않은 새로운 세상에 도착 했을 때는 설렘과 동시에 약간의 막연함이 있다. 낯선 타국에 대한 이질감이랄까..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미나와 함께였기 때문이다. 혼자가 아닌 둘이 하는 여행의 즐거움은 새로운 시공간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에 있다. 혼자였다면 무서웠을 수도 있는, 혼자였다면 자칫 놓쳤을 수도 있는, 혼자였다면 아쉬웠을 수도 있는, 혼자였다면 쓸쓸했을 수도 있는 모든 시간들을 소중한 이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이번 여행은 더욱 풍요로울 것이며, 더욱 아름다울 것이며, 무엇보다 더욱 따뜻할 것으로 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