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치의 잘못은 잘못이 아니다.
장관으로 내정되어 인사청문회를 거친 인사가 모교 동문 사이트에 올렸다는 글은 다시 생각해봐도 단순한 불만의 표시로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그의 글은 그릇된 관행이 사회 구성원의 가치관을 어떻게 훼손하고 있는 지를 심각하게 보여준다.
(누구처럼) 한 번의 위장전입이 없다.
(누구처럼) 한 건의 다운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누구처럼) 음주운전이나
(누구처럼) 논문표절은 더욱 없고,
(누구처럼) 주식 한 주 없다.
그럼에도 지방출신 흙수저라 음모와 모함을 받았다.
그의 이 표현은 이 시대 도덕의 기준이 절대적 기준이 아닌 상대적 기준이 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잘못을 했더라도 남들이 하는 만큼의 평균치의 잘못은 그게 정상이 되고, 남들보다 조금 더 잘못한 정도는 크게 문제될 게 없는 사회.
그리고, 조금 더 잘못한 게 일반화되면 그게 다시 새로이 정당한 도덕의 기준이 되면서 점점 도덕 불감증이 심화되는 도덕 불감증의 악순환.
그렇게 심화된 도덕 불감증을 누군가로 부터 지적받으면 자신이 흙수저라 당하는 핍박이라 생각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한 지적을 억울해 하는 사회 현상.
이러한 악순환의 출발점은 사회 지배계층이다.
잘못을 확인할 능력이 안 돼서였는지, 알았지만 윗선의 눈치 때문이었는지 부실했던 검증.
가재는 게 편이라서인지, 도둑이 제 발 저려서인지 엄연한 불법을 은근슬쩍 용인하고 묵인하며 넘어간 인사청문회.
여론의 질타가 잇따르고 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집권 세력.
국기문란 국기문란 하지만 정작 국기를 근본부터 문란케 하는 것은 지배계층의 그릇된 의식이다. 그들이 관행이라 생각하는 일상적인 행동들이 사회의 도덕적 규범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위 인사의 발언은 이 시대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식 기준을 가늠케 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지방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와 약관 스물의 나이에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미국 대학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은 고위 공직자가 스스로를 흙수저라 칭하니, 사회 속 소외자들은 그나마 자신들의 처지를 대변해주는 명칭마저 잃고 말았다.
자신이 흙수저라 피해를 받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장관 산하 공무원들은 또 어떤 억울함들을 토로할지,
아울러 앞으로의 인사청문회 대상자는 또 어떤 기준이 적용되며 도덕 기준을 새로이 설정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