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자녀 교육

군불과 뜸

by 강하

사실 자녀교육에 대해 나는 언급할 자격이 부족하다.
대부분 아내가 챙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키우는데 있어 기본적인 방향은 아내와 나의 코드가 일치하는 편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가 추구한 몇 가지 키워드는 [자율 중시]와 [기다림]. 즉, [군불과 뜸]이다.

애들이 걸음마를 시작하여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부터, 아이가 넘어졌을 때 우린 한 번도 우리 손으로 애들을 일으켜 세워본 적이 없다. 아스팔트에 무릎이 까져 피가 흐르며 아이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울면서 우리를 바라볼 때도 우린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서 우리 곁으로 올 때 까지 기다렸다.
가끔 우리끼리 되묻는다. "우리 너무 애정결핍 아니야??? "

아이들에 대한 체벌시에도 우리에겐 몇 가지 원칙이 있었다.
작은 잘못에 대한 반성이 요구되는 잔 매는 아내 몫이고, 사고와 행동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의 무거운 체벌은 내 몫이었다.
다행히도 내 몫을 행사한 적은 아들, 딸 각각 한 번씩 밖에 없었지만.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내가 체벌하는 걸 지켜보면 참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체벌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 아내는 항상 먼저 아이들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스스로 형량을 구형토록 한다.

이를테면, "네가 오늘 이러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때?"라고 과오를 인정토록 한 후, "그럼 몇 대 맞으면 된다고 생각해?" 하고 스스로 형량을 정하게 한다.
아이가 스스로 내린 구형량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때는, "세 대?? 엄마가 생각할 땐 세 대는 부족한 거 같은데..." 하면, 아이는 "다섯 대..." 하고 스스로 형량을 늘린다.


체벌을 정당화하는 건 결코 아니다.

체벌 없이 아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으면 최상의 능력 있는 부모일 텐데, 아쉽게도 우리 부부는 그 부분이 부족했기에 부족한 부분을 우리의 방식으로 메꾸어 나간 거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

하루는 아내가 아들과 딸을 앉혀놓고 생리대의 구조와 착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마뜩잖은 표정으로 엄마의 설명을 듣던 아들 녀석이 기어이 나도 궁금했던 질문을 한다.

"근데, 엄마... 나는 이거 쓰지도 않는데, 왜 이 걸 배워야 하는데~?"
아내의 답변은 명쾌했다.
"너는 직접 사용하진 않지만, '아~~ 여자애들은 남자에 비해 불편한 게 많구나. 그러니까 여자애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함부로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걸 느껴야지."

아들은 군소리 안 하고 엄마의 얘기를 듣고 있었고, 나 역시 묵묵히 신문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고등학교에서 신학기마다 아이들에게 작성시키는 학생기록부의 항목 중에 [장래희망]이 있는데,
다시 두 칸으로 나누어진다. [본인 의견]과 [보호자 의견]이다.
우리 애들의 [보호자 의견] 란에는 늘 [본인 의견 중시]라고 적힌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진로와 장래에 대해 무엇이든 강요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는 몇 가지 경우의 수에 대한 방향과 의견만 제시할 뿐, 결정은 본인들이 내리도록 했다.
꼭 필요한 경우에도 일시적인 강요보다는, 띄엄띄엄 얘기하며 스스로 결정할 때 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꾸준하게 군불을 때 가며, 계속 뜸을 들인다.

큰 애를 미국에 보낼 때도, 국내에서 학교 다니는 경우와 유학을 가는 경우의 예상되는 장단점을 설명하여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했고, 딸아이가 중고등학교 시절 학원을 다니는 것도 엄마는 정보 제공만 할 뿐, 다니고 안 다니고의 결정은 언제나 본인 몫이었다.

군불을 때 가며 뜸을 들이는 것이 때로는 중요한 시기에 시간의 손실을 가져오기도 하고,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것을 놓치는 等, 당장의 효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이 더디더라도 그게 나이를 먹으며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생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어린 녀석을 데리고 단둘이 1주일간 일본 배낭여행을 다녀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딸아이가 중3 이 되면서 매일 아침 등교할 때 습관적으로 하는 소리가 "엄마.. 나 오늘이 학교 가는 마지막 날일지 몰라요."였다. 중퇴를 하고 고등학교도 안 가겠단다.
음반 제작과 무대예술을 배우겠다는 게 이유였다.
급기야는 대안고등학교를 수소문하면서, 딸아이와 마주 앉아 같은 일을 하더라도 왜 인맥이 중요하고, 좋은 인맥을 쌓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를 설명했다.

딸아이가 외고에 합격한 후, "내가 외고에 갈 수 있는 밑바탕을 만들어준 건 엄마고, 외고에 갈 동기를 심어준 건 아빠야. 엄마 아빠, 나 포기 안 해주셔서 고마워요. 앞으로도 내가 짜증내더라도 포기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할 때, 우리 부부는 가슴 찡한 행복을 느꼈다.

딸아이는 결국 중학교 때의 자기 희망대로 중앙대 연극과를 졸업 후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얼마 전 뉴욕에서 작은 공연이지만 연출가로 데뷔 작품을 올렸다.

아이들에게 조급하게 선택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는 게 우리 부부의 일관된 지론이다.
단지 시간을 벌어주면서, 미래의 변화와 방향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해 주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때마다 나의 식견이 부족함이 많이 아쉬웠다.

자녀들이 인생을 사는데, 부모에게 강요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울러, 남아있는 긴 삶을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살 수 있다면, 1~2년 더 생각하는 것이 허비라고 생각지도 않는다. 스스로 생각하다 보면 사고의 틀도 바뀌고 가치관의 폭도 넓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