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프랑스를 벗어나 2001년 유럽배낭여행시 인상깊었던 독일 서남부 몇몇 곳에 대한 추억여행을 떠난다.
파리동역에서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출발시간은 10시 55분.
지하철 환승도 익숙치 않은데다 동역의 내부 구조도 몰라 발생 가능한 헤맴을 고려하여 서둘러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나섰다.
이름만으로는, 파리북역은 파리의 한참 북쪽에 있고, 파리동역은 동쪽에 위치했을 거 같은데, 실제 거리는 거의 붙어있다.
각 역의 운행노선을 보니 역의 이름은 지명을 딴 게 아니라 기능과 역할에 의한다.
즉, 파리의 북쪽으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하는 역이 파리북역, 동쪽으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하는 역은 파리동역이다.
생각해보니 대단히 실용적인 발상이다.
뭐.. 지도상으로도 북역이 약간 북쪽에, 동역이 살짝 동쪽에 있기도 하다.
다행히 숙소인근 지하철역 Volontaires에서 메트로 Line 12를 이용하면 파리동역 지하로 연결되어 편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늘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 파리동역이 이번 여행의 시작부터 에피소드를 안길 줄이야..
10시 5분쯤 도착하여 열차 출발시간 및 승강장 안내 모니터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10:55 슈투트가르트行 열차가 안 보인다.
'뭐냐...?'
여기서 1차 에피소드.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런 젠장... 운송노조 파업이라니...
프린팅한 온라인 티켓을 보여주며 "그럼 이 열차 이용이 불가능하냐?"고 물으니,
열차운행 시간표를 한참 뒤적이고는 "15:55분 뮌헨行 열차를 타고 슈투트가르트에서 내리면 된다"고.
"그럼 내 지정 좌석은?" 그건 모르겠단다.
빈 자리에 앉으면 된다는데, 파업으로 인해 운행편수가 줄었는데 빈 자리가 있으려나..
어찌됐든 갈 수는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만, 그때까지 어디서 뭘 한다지..
일단 다섯 시간동안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닐 순 없잖아..
때마침 출발을 궁금해하던 딸아이가 알려준 지하 1층의 코인라커를 찾았다.
이따금씩 발생하는 테러 때문인지 코인라커를 이용하는데도 가방 내용물 탐색을 한다.
X-ray 투시를 마친 가방을 들고 코인라커가 있는공간으로 진입하는데까진 좋았다.
여기서 2차 에피소드.
사용설명서대로 라커 문을 닫고 코인을 넣었음에도 보관용 티켓은 출력이 안 되고, 좀 있더니 라커 문이 다시 열린다.
코인만 꿀꺽. @ㅁ@~ '어라~ 이건 뭐지..'
8유로가 아까웠지만 내가 뭔가 작동을 잘못했나 싶어 다시 코인을 투입했음에도 상황은 마찬가지.
남들은 다들 보관을 마치고 나가는데 혼자 바보가 된 느낌이다.
둘러봐도 직원도 없고.. 다시 나가 직원을 불러 내가 시도했던 라커로 데려와 상황설명을 하는데,
내 영어가 짧아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아예 영어를 못한다.
게다가 눈치마저 없어 모두가 인정하는 나의 글로벌 바디랭귀지마저 전혀 감을 못 잡으니..
저도 답답했는지 다른 직원에게 넘기는데, 얘도 영어 안 되는 건 매일반이지만 그나마 눈치는 있어
나의 몸짓을 이해하고는 수동으로 조치를 취해주는데.. 라커 문을 열어보니 동전이 꽉 막혀있다.
직원이 막혀있던 동전을 다 꺼내더니, 동전을 얼마나 넣었냐고 묻는다. (아니.. 영어가 아니었으니 그렇게 묻는 거 같았다.)
16유로라고 하니, 세상에나.. sixteen을 못 알아듣네..
궁여지책으로 손가락 열 개를 폈다가 다시 여섯 개를 펴며 "ten plus six. ten and six" 라고 거듭 반복하니,
자기도 민망한지 막혀있던 동전을 모두 내게 건네주고는 황급히 자리를 뜬다.
얼마인가 세어보니, ㅋ~ 그 생쇼를 한 댓가로 3유로 벌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방을 라커에 보관한 후, 첫날 저녁을 먹었던 한식당 [잔치]를 찾아가 점심을 먹고 시내 산책을 했다.
한식당 [잔치]와 파리동역 사이를 두어시간 걷고는, 라커가 또 무슨 조화를 부릴지 몰라 시간 여유를 두고 동역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이어진 세번 째 에피소드.
티켓 삽입구(빨간 원)에 보관티켓을 삽입하면 내가 보관한 28 B 라커가 열려야 함에도 열리지가 않는다. (큰 M은 Medium Size라는 의미)
라커가 오밀조밀 붙어있어 내가 라커 위치를 헷갈렸나 싶어 근처 라커 세 개를 돌아가며 시도해봐도 마찬가지.
다시 나가 직원에게 얘기하니 보관할 때 동전을 모두 건네준 직원이 다시 나와 나를 보고는 씨익 웃는다.
마치 '또 너냐?'는 의미가 내포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수동으로 문을 열어준다.
"이 라커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거 같다"는 내 말에 아까보다는 조금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데,
파리동역 몇 번 더 이용하다가 이 여직원과 정드는 거 아닌가 몰라..
오전에 안내받은 15:55분 뮌헨행 열차를 타니 다행히 빈 자리가 많다.
이제 황당했던 걱정과 근심을 파리동역에 남기고, 열차의 스낵코너에서 여유를 만끽하며 슈투트가르트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