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고집과 소신

소신은 논리의 깊이에 비례한다

by 강하


직장생활을 할 때의 이야기다.

인사발령으로 부서를 옮기게 되었는데,
전임자가 업무인계를 하면서 "ㅇㅇㅇ대리는 가급적 빨리 다른 데로 보내는 게 좋을 거"라고 권한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 물으니,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고 고집이 너무 세서
상사의 말도 안 듣고 동료들과 융화도 잘 못한단다.

같이 일을 해보니, 정말 고집이 세다. 자기주장도 강하고.
그런데, 같이 앉아 얘기를 해보면 주장이 강한 게 맹목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름의 근거와 논리가 있다. 막연하게 자기주장만을 빡빡 우겨대는 똥고집이 아니더란 얘기다.

동료와 융화를 못 한다는 것도,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유난히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

늦게까지 때로는 밤샘을 하며 일을 많이 한다는 거다.

그렇다고 동료들이 왕따를 놓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단지, 전임자와 코드가 안 맞았다고 할까, 고분고분하지 않은 게 싫었던 거다.

그 친구는 나와 같이 근 4년간을 정말 재미있게 일했고,
인사고과도 제일 잘 받아 특진까지 했다.
나의 직장생활中 가까이 하고픈 사람으로 기억되는 후배 중의 한 사람이다.



예전에 건축과 관련된 일에 관여했을 때, 가끔 건축사와 생각이 달라 논쟁을 벌일 때가 있었다.
어떤 때는 일부러 꼬투리를 잡아 논쟁거리를 만들기도 했다.
자기 설계물에 대한 건축사의 철학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현들께서 남을 시험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성현이 아닌 속물인지라 가끔은 남을 시험하게 된다.
특히, 믿고 쓰고 싶은 사람에 대해서는 그 욕구가 더 강해진다.

그럴 때 나는 고의로 그 사람과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며 반응을 보기도 한다.
부담 없이 내 의견에 동조하는지, 아님, 나와 맞서는지,
맞서더라도 어떤 식으로 맞서는지를 본다.

늘 적당히 동조만 하는 사람에겐 믿음이 안 간다.
생각의 깊이가 부족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일 하는 사람이 나를 대신하여 내 상대방과 얘기할 때,

내 생각을 전하기보다 상대의 생각에 동화될까 두렵다.

아무 근거 없이 자기주장만 하는 사람은 늘 불안하다.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를 대신하여 만나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까 염려된다.

논리와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는 사람은 나름대로의 깊이가 있다.
설득력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믿음이 간다.
설사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나는 그 의견을 믿고 존중하고 따라간다.

자기의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은
자기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상대의 의견을 접목시킬 줄 안다.

소신은 다소 느릴 수는 있어도,

결코 잘 못 되는 법은 없다는 것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나의 신념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결국은 미숙한 사람이다.

인간이 가장 인간답다거나, 혹은 인간의 한계가,
자신의 허물은 못 보면서 남의 허물을 예로 들어 絶對善과 王道를 논하는 거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