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내가 이 일을 사랑하는 이유
이 브런치는 전문가가 아닌, 한 명의 기획자겸 대표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느꼈던 이야기들, 그리고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푸념 공간이다. 전문가의 실속 있는 이야기를 기대했던 분들에게는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조언은 언제나 환영한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독자가 많기를 바라며, 미술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기 위해 함께 고민하기를 고대한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사업이란 것을 하며 느낀 힘든 점 중 한 가지는 ‘사수’가 없다는 점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잘하고 있는 것인지 평가해주지 않는다. 온전히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평가하며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 때문에 빈번히 업의 페이스를 놓치게 되고, 일이 많은 것인지 내가 능률이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후자에 가깝지 않을까) 오전과 오후에는 사무실에서, 저녁엔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같은 것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하는 일 중에는 지칠 때 즈음 내 뒤통수를 때려주는 자극제가 있다.
바로 다음 달 진행할 기획 전시회의 메시지를 잡았을 때다. 일전에 언급했지만 한때 나는 한 명의 창작자, 작가가 되기를 꿈꿨다.
비록 나의 참을성과 손재주는 그 길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몽상을 즐기고,
남들에게는 시답잖은 이야기가 나에게는 꽤나 신선하게 다가와 한 주 내내 머릿속에 남아있기도 한다.
“나눌 줄 아는 사람들과 일을 꾸미고 세상을 깨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세상이 개인일 수도, 집단 일 수도 있지만 그 크기는 상관없다. 그래서 나는 이 일을 하는 게 즐겁다.
-2019년 11월 12일”
내 아이폰 메모장에 남겨져 있는 메모다. 20대 후반에 웬 중2병이냐 싶겠지만 나는 업무와 삶의 압박감에 짓눌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 나 스스로와의 대화를 통해 나를 달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메모장에 누군가 나에게 해줬으면 하는 이야기를 끄적이고는 한다.
어찌 되었든,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내 중2병 같은 성향은 시각예술 분야에서 기획자로서 일을 하기엔 아주 안성맞춤이라는 점이다.
함께 전시하게 될 작가님의 작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내가 느낀 것들을 날 것으로도 메모하고 작가님의 배경을 조사하며 하나의 메시지로 담아내고는 한다.
또 이러한 메시지를 작가님과 나누며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관람객에게 전달할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과정은 2년째 쉬지 않고 하고 있지만 매번 새롭고 소름 돋는 일이다.
이야기만 담아내는 것은 아니다. 전시 작품은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디스플레이하는지 등 참여 작가님께 전달할 전시 기획안을 끄적이던 노트북 앞에서부터 설치하고 또 철수하는 그날까지 얕고 긴 호흡이 계속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꽤나 즐겁기만 한 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예술가와 영감 넘치는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사람들에게 작가와 작품이 가진 예술적 가치를 전달할지 구상하고 실행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예술 경영인이라면 미술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 가치를 관람자가 의도에 맞게 즐기고 시장이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의무이자 책임이다.
창작자와 기획자는 함께 준비했기에 척하면 척 공감할 수 있지만, 관람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운영하고 있는 복합문화 공간은 꽤나 친절한 전시공간이 되었다.
영화나 음악 같은 직접적인 내용 전달이 이루어지는 콘텐츠에 비해 미술 작품은 관람자의 해석이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관람자에게 먼저 작품을 해석해볼 기회를 주고 캡션 뒷장에 작가의 메시지를 숨겨놓거나, 전시 작품 중 한 가지 작품을 미완성된 채로 두어 관람객이 직접 완성하게 하는 참여형 작품과 같이 ‘눈으로만’ 보는 전시가 아닌 체험할 수 있는 하나의 ‘경험재’로서의 전시를 추구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작품을 감상할 때 도움이 될까 적당한 취기를 제공하기도 한다.(갤러리 펍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전 브런치를 통해 언급했지만 나는 미술,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다. 완전한 향유자의 입장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래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어느 정도는 관람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점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서두에 말했던 ‘사수’가 없는 점은 장점이 되기도 한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
온전히 기획자와 작가의 의도로 구성되기 때문에 비교적 기존 전시장에서 볼 수 없는 실험적인 시도들을 자주 할 수 있는 편이다.
“사실 한 가지 꾸미고 있는 일이 있다.”
향유자가 직접 기획하는 전시회를 만들어볼 예정이다. 현재 운영하는 복합 문화 공간은 전시장이기도 하지만 매주 수십 명의 미술이란 취향을 가진 분들이 오가는 미술 커뮤니티로도 운영이 되고 있다.
이 커뮤니티의 모임들 또한 내가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커뮤니티에는 재능 있고 감각적인 분들이 많이 있다.
오는 5월, 현업 작가를 모임장으로 모시고 내가 직접 파트너로 참여하여 멤버분들과 함께 전시에 대한 주제부터 전시하게 될 작품을 함께 만드는 정기모임을 열고자 한다.
참여하게 될 분들은 현업 작가님과 함께 전시를 직접 기획하고 함께 전시 작품을 만들며 현업작가와 함께 한 달간 진행될 전시에 기획자와 작가로 참여하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겐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미술이 보다 우리의 손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공연장에서 가수와 함께 떼창을 하듯 가끔은 작가와 관람자가 말 그대로 함께 호흡하고 하나의 이야기를 꾸며보는 기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 19라는 재난으로 모두 어쩔 수 없이 잠시 거리를 두어야 하지만 한 사람보다는 세 사람, 열 사람이 함께 고민하고 나누며 미술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화로, 즐길 수 있는 문화로 그리고 소비할 수 있는 문화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ps. 코로나 19에 맞서는 대한민국 의료인과 환자 분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