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감상 (비평이 아니라)
관객이 봉준호라는 이름에 기대하는 세계관은 이번에도 유쾌하게 비틀려 니플하임으로 가는 우주선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우스꽝스러우리만큼 무능한 정치 지도자와 그를 따르는 뇌 빈 시민들, 그리고 가장 아래 계급에서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투쟁하는 소모품(익스펜더블) 미키까지. 식품을 통제하던 <설국열차>의 제한적 공간과 <기생충>의 계급구조가 자연스레 드러나는, 너무나 봉준호스러운 <미키 17>에서 '우주선 안에 대체 중력이 어떻게 존재하느냐' 따위의 과학적 개연성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신체 프린팅과 기억 복제가 가능할 정도로 고도로 과학이 발전한 세계관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제목으로 던져진 미키(들), 즉 그 복제인간의 이야기일 것이다.
전반부가 양산해 내는 질문들은 무척 흥미롭다. 잘려버린 채 우주를 유영하는 손 토막을 뒤로하고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비추는 숏, 아직 다 죽지도 않은 미키를 태워 죽여버리는 숏들은 죽음을 노동으로 삼아도 되는지의 윤리성을 생각게 한다. 그리고 한층 더 나아가 또 한 명의 미키가 등장하며, 영화는 두 미키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공리 극대화에 대한 방법론의 차원으로 도약한다. 크리퍼에게 '제발 한 번에 나를 먹어줘'를 내뱉던 17이 배양육을 먹은 뒤, 마샬이 총으로 죽이려들자 '제발 쏘지 마세요'를 외치게 되는 그 전복은 바로 18의 등장 때문일 것이다. '이전엔 내가 죽은 뒤 다시 살아나 이어지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거잖아'라는 대사에서 이른바 멀티플의 딜레마는 탁월하게 와닿는다.
이처럼 가장 봉준호스러운, 흥미로운 역설과 딜레마를 늘어놓는 전반부에 비해 <미키 17>은 후반부에 이르면 가장 봉준호답지 못하게 흘러간다. 쌓아놓은 물음표들은 수박 겉핧기식으로 내쳐지고 당혹스러운 마침표로 향하기 때문이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확실히 그 얕음의 인상을 떨치기 힘들다. 그리 급박해 보이지도 않는 서사구조상의 '절정'에 닿을 무렵, 마샬을 호위하던 군사들과 잔챙이 부하 프레스턴은 화면에서 종적을 감추고 영화는 미키 18과 마샬 둘 만의 공간으로 변해 있다. 이윽고 배경음은 뮤트 되고 '나도 두려워. 네가 인간이라는 뜻이지'라는 대사와 함께 18은 자폭을 택하는데, 여기서 정말이지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다.
둘의 흥미로운 공존가능성을 탐구하기도 전에 왜 이렇게 18이 퇴장해야만 하는가. 결국에 그가 마샬의 손에 달려 있던 버튼을 누른다는 대목에서, 끝까지 그의 생사는 체제에 종속되었음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 '인간 한 명'의 목숨이 필요하지만, 마샬은 인간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기에 '인간이라 할 수 있는' 18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일까. 나름의 답변을 찾으려 해 봤지만 굳이 '삶과 죽음'의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클라이맥스의 당위성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18의 희생으로 17은 마침내 빨간 버튼을 누르며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길 성공하고, 나샤는 위원회 선거에서 당선하며 시스템 전복의 희망이 보인다. 이건 봉준호가 아닌데. 더군다나 17의 "나도 이젠 행복해도 괜찮다"는 유치한 대사는 '18이 행복할 수 있었을 방법은 없었을까'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그 딜레마와 공존 가능성을 더 깊게 파고들기 보다는 안정적인 교훈극으로 귀결되는 이야기의 끝에서, 미키 18은 시스템도 사람들도 아닌 '서사'를 위해 희생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봉준호의 엔딩들은 얼마나 훌륭했던가. <설국열차>의 두 고아만 남고 기차가 폭파되는 엔딩에는 희망도 절망도 아닌, '선택할 수 없음'을 선택해야만 하는 무력감이 훌륭히 녹아 있다. <기생충>에서 '돈을 아주 많이 벌어서 그 집을 사면 된다'의 기우의 씁쓸한 독백 엔딩은 자본주의 계급구조의 부동성과 견고함을 되려 강하게 각인시켰다. <살인의 추억>과 <마더>의 엔딩은 한국 영화사에 이미 족적을 남긴 성취다. 하지만 <미키 17>의 난데없는 영웅서사와 희생은 아쉬움을 짙게 남길뿐이다. 그게 봉준호라서 더욱 그렇다. 많은 제작비가 든 만큼 대중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했던 것일까, 내가 읽어내지 못한 시선의 깊이가 담겨 있는 것일까. 무지한 나는 아직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기대를 배반시키는 서사의 독창성을 자랑하던 그가 할 수 있었던, 말하자면 '봉준호만이 할 수 있었던' 엔딩은 분명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팔짱 끼고 감히 봉무비의 허술한 부분을 짚기는 싫었다. 되려 영화를 봐도 늘 좋은 점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편이지만 어쩔 수 없이 타의에 의해 지적질을 해야 해서 쓴 이 비문을 용서해 주세요...
장대한 세계관을 오프닝의 반복을 통해 깔끔하게 설명해 낸 건 탁월했고, 무엇보다 로버트 패티슨의 연기는 유일무이했다. (어쩌면 유일유이가 맞는 표현일지도?) 무엇보다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보게 한 정재일 음감님의 음악은 역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봉보다 박을 애정하는 건 어쩔수가없다. 봉준호도 이제 스스로의 알을 깨는 작품을 해냈으면 좋겠다. (JSA로 이데올로기를 다룬 뒤 복수 트릴로지와 박쥐로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들추다 이젠 하다못해 순도 백 퍼센트의 사랑 이야기까지 완벽히 해낸 그의 필모를 보라 박찬욱은 항상 스스로를 깨부수다 못해 팽창하지 않는가)
나는 아직도 봉감독님의 최고작이 나오지 않았다고 믿는다. 개인적으론 <마더> 같은 거 또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감독님 쥬뗌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