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끝자락에, '작가의 서랍' 속 글을 꺼내보며
안녕하세요, ○○엔터 A&R ○○○입니다.
이 한 문장으로 설명되던 내가
안녕하세요, ○○○입니다.
직업 타이틀 없이
'온전한 나'로 살아본 3년에 대한 기록이다.
‘나의 회고록’이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으로
글쓰기를 시작해놓고,
그 글은 오래도록 ‘작가의 서랍’ 속에만 들어 있었다.
쓰다 만 글은 정리되지 않은 서랍처럼
늘 마음 한편을 찜찜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2025년이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앞으로의 새로운 계획보다
지나온 시간을 한 번쯤은 제대로 바라보고 싶어졌다.
아마도 올해 가장 큰 결실이
‘대학원 졸업’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이제 다시 직장인의 세계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퇴사 후 지금까지 3년정도 흘렀다.
나는 나에게 묻고싶다.
너는 이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기획자(A&R)로 일해왔다.
A&R은 흔히 엔터테인먼트의 ‘꽃’이라 불린다.
크리에이티브 역량을 기반으로
프로젝트 전반을 리딩하는
상당한 권한과 책임이 함께 주어지는 직업이다.
직업 하나로 나의 존재와 위치가
자연스럽게 규정되던 시절을 뒤로하고,
홀로서기를 했을 때
의외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불안이었다.
회사라는 강력한 브랜드와
직함이라는 ‘파워’가 사라지자
내 이름 석자만으로 나를 설명하기엔
항상 부연 설명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설명이
상대에게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표정으로
돌아올 때면,
그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종종 상처를 받았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나를 설명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일이.
그런데 지금,
2025년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단단해졌다.
‘직함 없는 나’로도
충분히 괜찮은 것 같다.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나에 이르게 되었을까.
2022년 8월,
퇴사를 결심했다.
어느 순간부터
‘40대가 되어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내 일을 사랑했지만,
엔터테인먼트 현장은
정신력만으로 버티기엔
신체적으로도 너무 고된 곳이었다.
결국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퇴사 후,
나는 ‘다음 커리어’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개인 브랜딩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목표는 단순했다.
딱 3년.
내 이름으로 수익을 만들어보자!
내가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내 경험이 곧바로 돈이 되는 곳, 강연이었다.
기획자로 일하며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취업과 산업 구조를 주제로 한
오프라인 강연을 시작했고,
이를 온라인 강연과
컨설팅 프로그램으로까지 확장했다.
나는 ‘강연으로 1,000만 원 벌기’를
하나의 목표로 잡았다.
지난 3년 동안
강연으로 벌어들인 수입은
1,300만 원을 조금 넘는다.
직장인의 연봉으로 환산하면
연 400만원 남짓.
솔직히 말해
이 돈으로 먹고살 수는 없다.
벌어둔 돈을 많이 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름으로 돈을 벌었다’는
이 첫 경험은
무척이나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이 일을 하며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를 돕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나를 통해
누군가가 변화를 겪는 순간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
A&R이 나와 잘 맞았던 이유도
사실 이 지점에 있었다.
신인이 아티스트가 되어가는 순간을
함께하며 느꼈던 보람과 닮아 있었다.
강연이 끝난 뒤
학생들의 개별 상담을 듣느라
수업이 50분 넘게 늦어진 날도 있었다.
집에 늦게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차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보상이라도 받듯,
학생들이 건넨
“고맙습니다”라는 한마디,
직접 쓴 손편지를 받았을 때
나는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편지는
책상 위에 두고두고 본다.
‘온전한 나’로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모습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된 나였다.
나의 차별화 전략은 분명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실무자 출신 ‘연구자’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
가장 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기획자로서 써온 글은
대부분 제안서와 보고서였다.
가독성 있게,
짧은 시간 안에 상대를 설득하는 글.
하지만
논점을 세우고,
촘촘한 설명을 덧붙이며
독자를 끝까지 이끌어가는 글쓰기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연구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논문을 쓰며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리서치를 하고,
구조화한 뒤
나만의 발견(finding)을 만들어내는
글쓰기 과정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매일 책을 읽고,
매일 글을 쓰는 습관도
그때부터 만들어졌다.
‘아이돌 감정노동’이라는
시의성 있는 논문 주제 덕분이었을까.
감사하게도
신문사 지면에
칼럼을 쓸 기회로 이어졌다.
논문과 달리
정해진 글자 수 안에서
현상을 날카롭게 짚고,
논점을 이끌어가면서도
독자에게 쉽게 읽히는 글을 써야 했다.
친절한 설명과 이론틀을 중시하는
학술적 글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두 편의 칼럼을 쓰게 되었고,
생산자 연구에 관심이 있던 나는
하나는 기획자의 이야기를,
다른 하나는 아이돌의 이야기를 담았다.
케이팝을 다루는
신문사 연재 시리즈에
내 글이 실리고,
원고료를 받다니!!
무엇보다
내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쓰고,
그 글이 대중에게 읽히며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경험은
꿈처럼 느껴졌다.
그때 확신했다.
나는
‘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구조를 통해 바라보고,
그 시선을 글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온전함’은 또 다른 의미에서
건강함이기도 하다.
회사를 다닐 때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데 익숙했다.
행복하다고 믿었지만,
그 열정은 어느새 ‘자기 착취’로 이어졌고
나는 나를 돌보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건강을 잃어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호르몬 질환이 있어
스트레스에 특히 취약하다.
기본적으로 잘 먹고, 잘 자야 하는 몸이다.
하지만 불규칙한 식사와 수면,
혹독한 경쟁 사회 속에서의 스트레스는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게 만들었다.
퇴사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루틴 있는 삶을 만드는 것이었다.
첫째, 잘자기.
하루 8시간을 자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운동을 해 피곤한 상태를 만들어도
뜬눈으로 밤을 보내거나
새벽 4시에 눈이 떠지는 날이 반복됐다.
1년쯤 지나자
조금씩 새벽이 아닌
아침 시간에 눈이 떠지기 시작했고,
그제야 ‘개운하게 잔다’는 감각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둘째, 운동하기.
퇴사 후 가장 먼저 PT를 등록했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작은 1:1 피트니스였다.
PT와 개인 운동을 병행하며
주 7일,
강박처럼 운동을 나갔다.
하루하루가 쌓였고,
그 시간은 결국 습관이 되었다.
셋째, 식습관 바꾸기.
빠르게 먹을 수 있어 좋아했던
라면과 배달 음식을 끊었다.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 위주로 먹었고,
저녁 7시 이후에는
공복을 유지하는 습관을 만들었다.
잠을 잘 자고,
운동하며 스트레스 관리하고,
건강한 식습관으로 바꾸자
몸이 달라졌다.
그 변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것은
내 호르몬 수치였다.
나는 2023년 2월을 기점으로
약을 완전히 끊었고,
2025년 12월인 지금까지
재발하지 않았다.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완치라고 봐도 돼요.
병원에 안 오셔도 됩니다”
수술 없이,
스트레스 관리와 생활 습관만으로
완치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다.
무엇보다
‘온전한 나’로 산다는 건
내 이름 석 자로
얼마만큼의 성과를 냈느냐보다,
그 이름을 내가 인정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3년이라는 공백기 동안
내 안에서는 분명 무언가 자라고 있었지만,
그 성장을
타인에게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그 답답함 속에서
나는 묵묵히 불안한 나를 버텼고,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사실 그 시간 동안
자존감은 많이 흔들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뛰러 나가고,
글을 쓰고,
어떻게든 나를 붙잡으려 애썼다.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었다.
이렇게 글로 써 내려가고 나서야
‘공백’이라 불렀던 이 시간을
비로소 온전히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내년의 삶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로 살아본 시간’은
이제 나에게 가장 단단한 무기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