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겸 P형 인간의 즉흥적이며 계획적인 답사법
거리두기 제한이 풀리는 걸 제대로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한산하던 자정 즈음의 도로는 다시 차와 사람들로 북적이고 그립던 페스티벌 소식들도 속속들이 들려옵니다. SNS엔 여행 광고도 전보다 많이 자주 뜨고요. 이런 들뜬 마음 담아 공간을 방문하는 저의 소소한 루틴을 적어보려고 해요. 예상치 못하게 주어진 시간에, 가고 싶던 곳에 가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
저는 수집가입니다. 동시에 미니멀리스트입니다. 그래서 눈에 잡히고 손에 쥘 수 있는 오브젝트보다 정보를 아주 많이 수집합니다. 노션과 SNS, 지도 어플에 주로 아카이빙을 하는 편입니다. 네이버 지도나 구글 지도에 장소를 저장해놓은 곳들도 다 가보지 못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갈 곳들이 무서운 속도로 쌓여가고 있습니다.
‘가고 싶은 공간’은 세 가지 경로로 발견합니다. 지인의 추천, 매체의 큐레이션, 그리고 우연입니다. 공간 다니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리면 추천을 쉽게 받을 수 있습니다. 지인들은 얼마 전 다녀온 괜찮은 곳을 제게 알려줍니다. 관심 있는 학과를 다니는 덕에 수업을 통해 알게 되는 양질의 공간도 많습니다. SNS 팔로우와 잡지, 뉴스레터 구독은 세상에 내 관심사를 드러내는 행동입니다. 내가 마케팅 타깃 과녁에 적극적으로 들어가게 되면 내 입맛에 맞는 여러 매체의 큐레이팅 된 정보들을 힘 들이지 않고 받아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신세계 빌리브 뉴스레터, 데이트립, 월간 디자인과 같이 기업에서 큐레이팅 한 정보뿐 아니라 공간 전문 크리에이터들도 테마를 가지고 장소를 추천하고 있어 행복합니다. 마지막 우연은 자주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걷거나 대로변보다 한 두 블록 안쪽 골목을 걷는다던지 운전할 때도 유심히 눈에 띄는 공간을 포착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공간 목록을 만들어 두면, 공부하고 일도 가끔 하는 아이 엄마로서 예상치 못한 여유시간이 생겼을 때 늘 가던 익숙한 곳이 아닌 새로운 곳을 찾아가기가 쉽습니다. 즉흥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정보를 탄탄하게 쌓아두는 것입니다.
매일 다니는 출근길. 에어 팟만 빼도, 핸드폰에서 눈만 떼도, 햇살과 바람이 피부에 온전히 닿는 감각에 집중하면 같은 길이어도 매일이 다릅니다. 저는 주로 서울의 공간을 방문하기 때문에 차가 아닌 대중교통을 이용해 답사를 다닙니다. 목적지 주변의 정류장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이어폰을 뺍니다. 혼자 다닐 땐 길을 잠시 잃어도 좋으니 번거롭더라도 지도를 네비처럼 켜 두지 않고 잠깐 읽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습니다. 사람이 없는 야외 공간이면 마스크를 들어 냄새도 맡아봅니다. 비 오는 날이면 감각이 더 예민해져 분위기를 더 잘 흡수하는 건 기분 탓일까요. 답사를 다녀왔다는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땐 휴대폰을 꺼내기는 하지만 요즘은 도착하자마자 사진기를 켜지 않고 일단 경험부터 하려고 노력합니다. 주의를 끄는 것, 거슬리는 것, 좋은 것, 이상한 것을 느껴보려고 합니다.
경험을 마치면 기록을 합니다. 노션에 메모를 남기기도 하고, 너무 감동적이어서 타이핑할 엄두가 나지 않으면 워치에 음성 메모를 남깁니다. 공간에서 안내 자료를 제공한다면 읽어보고 휴대폰, 똑딱이, 필름 카메라 중에서 그날 들고 있는 것으로 사진을 남깁니다. 낯을 덜 가린다면 공간을 마련한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데, 저는 그러기엔 너무 쑥스러움을 많이 탑니다.
답사지의 사진과 글을 정리하는 작업은 가급적이면 당일에 하지 않습니다. 『집을 순례하다』시리즈의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글에서 그래도 된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감정과 기억이 가라앉게 놔두는 시간을 갖고, 마감을 앞두거나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살아남은 기억을 기록합니다. 저는 이때 추가적인 리서치를 합니다. 미리 알아보고 가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추천을 받을 때 접한 정도의 정보만 알고 공간을 방문하는 것이 적당한 정보량이라고 생각합니다. 추가 리서치를 할 때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면 현장에서 받았던 인상이 달라지는 것도 재미입니다. 글을 올린 뒤 반응을 느끼는 것도 즐거운 과정이고 이때 새로운 공간을 추천받기도 합니다. 이런 즐거움의 순환고리 덕에 답사를 계속 이어가 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반년 동안 공간 계정을 운영하며 나는 어떤 과정으로 공간을 발견하고, 다녀와서 기록을 남기는지 훑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소소하게 이어온 길을 앞으로도 꾸준히 밟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의 답사 계정을 살포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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