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내 공간’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지난 겨울방학은 내게 맞는 공용 오피스를 찾아 유랑하는 기간이었다. 할 일들이 명확했고 그 일들을 수월하게 마무리했다. 지역적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로이 떠도는 것은 좋았지만 고사양 노트북을 포함한 이동식 작업실을 이고 지고 다니다 보니 어깨가 너무 아팠고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유독 더운 여름방학엔 그렇게 돌아다닐 자신이 없었다. 노트북 보다 데스크탑으로 처리하는 게 수월한 일들이 많아졌다. 집은 더웠고 학교는 공용으로 관리되는 곳이다 보니 ‘내 공간’이라고 부르기는 힘들었다.
내 작업실을 마련하고픈 마음은 작게 피어났지만 망설여졌다. 학교를 다니고 육아를 하며 작업실에서 보낼 시간이 얼마나 될까? 지난 일 년동안 학교를 다닌 패턴을 돌아보면 등원 후 학교에 가 하원시간에 맞춰 집에 왔다. 육아 부담이 없는 친구들에 비해 학교에 머무를 시간이 적다 보니 더 집중해서 작업했다. 학교에서 보낼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낸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투자 할 가치가 있었다.
학기말 전시 준비기간엔 아이에게 ‘오늘은 아빠랑 자는 날’이라는 걸 설명해주면 학교에서 밤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밤을 꼴딱 새고 아이를 등원하기 위해 집에 다녀오는 식으로 내 몫을 소화하려 노력했다. 작업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눈을 편하게 붙이고 등원하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아래 깔려있던 욕구는 그 누구도 침범하지 않는 나의 공간을 가지고 싶은 것이었다. 결혼은 두 사람이 단순히 같이 사는 게 아니어서… 원치 않는 손님, 손길, 물건들이 예고도 없이, 아무 법칙 없이 불쑥 등장하고 떠나질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 ‘자기만의 방’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집이 넓었을 땐 아이가 너무 어렸고 아이들이 큰 뒤엔 좁은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한때는 우스갯소리로 큰애가 스무살이 되면 엄마는 독립할거라고 말했다. 근데 그게 다섯살짜리에게 할 말은 아니었단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친정의 내 방도 오랜만에 방문했을 때 압도적으로 큰 붙박이 책장이 들어서는 바람에 문을 활짝 열 수 없게 변해 있었다. 나는 화장실 환풍기를 늘 틀어둬 습도를 낮추는 게 좋은데 십분도 안 돼 스위치는 꺼지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내가 자란 집이어도 엄마의 공간이기 때문에 엄마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존중은 평화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지만 내 안의 욕구를 풀어주진 못했다.
사람들이 집으로 초대할 때 나도 그들을 나의 공간에 초대해 보답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곳이 없었다. 묘한 열등감과 부채의식이 뒤섞여 이런 내 마음을 부추긴 면도 있다. 월세와 관리비를 합치면 한 달 아르바이트 비용을 조금 넘는 곳을 찾았다. 너무 욕심부리지 않으려 노력하며 셋팅하고 있다. 수입을 넘는 투자를 했으니 수익을 늘리는 고민을 요즘 많이 한다. 투자가 사치가 되지 않게 오늘도 작업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