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을 차리고 생긴 마음의 변화
작업실 계약을 마치고 당근마켓, 이케아와 인터넷 최저가, 셀프 제작을 부지런히 찾아보며 조금씩 구색을 갖춰나갔다. 돈이 나가기만 하고 일거리를 찾는 건 잔잔한 실패의 연속. 숨고에 올라오는 견적 요청서 중 어떤 것들에 답변을 해야 하는지 기준이 서지 않았다. 수수료를 내고 견적서를 보내도 묵묵부답.가랑비 맞는 솜이 천천히 처지듯 기분도 조금 다운되고 압박감도 느껴졌다.
노트폴리오라는 곳에 포트폴리오를 업로드하면 참가자에게 디자이너 의자를 비롯한 소품을 보내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작업실에 가져다 놓으면 좋을 소품들이라 하나라도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작업물을 업로드했다. 그렇게 두 번째 온라인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 그리곤 매 달 말, 자율적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모임에서 나를 '기획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포트폴리오와 함께 올린 그 소개를 통해 첫 의뢰가 들어왔다.
첫 미팅을 진행한 후 조금이라도 공사에 도움이 되고자 개인사업자를 냈다. 전에 취득한 실내건축기사 자격증도 있겠다, 석사 공부도 하는 중이고 경력도 있으니 인테리어 사업자를 내는 게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홈택스에 신청한 뒤 정확히 두 영업일 뒤에 내 이름의 사업장이 생겼다. 작업실이 없었다면 사업자를 낼 때 등록 주소지를 선정하기 어려웠을 것인데*, 신기하게도 내가 작업실을 미리 잘 구해놨던 것이다!
*작업실이 없더라도 거주지를 주소지로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만(임대차계약서 제출) 저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작업실을 구하는 게 결과적으로는 더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졸업 후 일을 배울 수 있는 곳에 취업해 역량을 키우고 싶은 마음은 아직도 유효하다. 마음가짐에서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취업만 생각했을 땐 공간 기획이나 인테리어와 관련 된 모든 것을 평균 이상으로 잘 해야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강점으로 내세운 회사를 만들었으니, 내가 잘 하지 못하는 영역의 일은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선택과 집중이 가능해져 나를 지나치게 몰아세우지 않게 되었다.
명함을 만들기 위해 대학생 때 대외활동을 하며 생긴 명함부터 대학원 들어오기 전까지 내 명함을 꺼내봤다. Staff 라고 표기 된 나는 제너럴리스트로 성실하게 일을 잘 해야 했다. 그러니 뭐든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이제는 나를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 지 고민을 한참 했다. 그 과정에서 나를 당당하게 'Owner'나 '대표'라고 부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몇년 전, 경쟁심이 강한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기질을 거부했던 때가 떠올랐다. 기질과 타이틀에 좋고 나쁜 건 없다. 기질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타이틀에 따르는 역할을 해내는 법을 익혀두면 될 뿐이다. 그렇게 나는 Creative Director 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