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놓고 보면 생각보다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달리는 말의 고삐를 놓아버린 채 지난 몇 주를 보냈다. 마지막으로 작성한 주간일정표는 8월 중순에 그 주에 꼭 해야 할 일만 적어둔 페이지다. 할 일에 매몰되는 게 싫어 “생각할 거리”라는 항목도 추가했는데 그 칸은 비워둔 지 오래. 고삐를 놓치고 우왕좌왕 로데오 하듯 버티려니 말이 달리지 않아도 쉽게 진이 빠졌다.
잠을 줄여 작업을 하면 당장은 그 많은 걸-실제론 그리 많지도 않다… 아닌가?-해 내는 나 자신에게 취한다. 그럼 다음 날은 몽롱하게 보낼뿐더러 속도 안 좋아져 먹는 걸 소홀하게 된다. 늦잠 때문에 텀블러를 놓고 나오면 물도 적게 마시고, 피로감 때문에 평소라면 따릉이를 이용할 걸 주차된 자전거들을 외면하고 지하철역으로 빨려 들어간다.
잠, 식사, 운동을 충분히 하면 인지력이 높아져할 일과 일정을 잘 정리할 수 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 생기고 이유 있는 거절이 가능하다. 루틴이란 게 꼭 무슨 오일을 바르고 인센스를 켜고 감성적인 소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잘 먹고, 잘 자고, 가볍게 운동만이라도 잘 하자. 사실 이 글은 내게 하는 잔소리로 가득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신이 나 앞 뒤 생각 안 하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거나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잡은 방향과 말들 덕분에 성장한다. 동시에 부담감도 많이 느껴 일을 섣불리 시작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럴 땐 내가 내딛는 한 발 한 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생각해야 발을 내딛을 수 있고, 일단 시작하면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도, 어렵지도 않다.
월요일이 연휴인 두 주를 보내며 제대로 쉬거나 일을 깔끔하게 한 것도 아닌 나를 발견한다. 조금 더 하려는 욕심은 내려놓고 루틴을 되찾자. 고삐를 다시 손에 쥐고 시원하게 쉬러 가는 것도 할 일로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