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애써 완성한, 가장 서툰 무대
그렇게 한 해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린이집에는 이 시기가 되면
꼭 찾아오는 날이 있다.
재롱잔치.
그 이름만으로도
아, 올해도 끝나 가는구나 싶어지는 날이다.
일곱 살 형님반은 하나의 공연을 만든다.
동작의 각도를 맞추고,
몇 주 동안 반복하며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하지만 내가 맡았던 세 살 반은 달랐다.
무언가를 잘 해내는 것보다
그저 함께 서 있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한 아이들이었다.
그래도 처음 맡는 재롱잔치였기에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처음엔 놀이처럼 시작했다.
노래에 맞춰 움직이고,
같이 웃고,
그저 따라 하기만 하면 됐다.
아이들은 몇 번만 반복해도
노래가 나오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래서 조금 욕심을 냈다.
자리를 잡고,
같이 시작하고,
같이 멈추는 연습.
그때부터였다.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한 건.
늘 좋아하던 노래에도
더 이상 뛰어오지 않았고,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나는 아이,
그 자리에 주저앉는 아이,
조용히 등을 돌리는 아이가 생겼다.
그제야 알았다.
아이들도 알고 있었던 거다.
이게 더 이상 놀이가 아니라는 걸.
그래서 연습을 나눴다.
짧게, 여러 번.
오전, 점심, 오후.
어르고 달래며
조금씩 시간을 쌓았다.
하지만
조금 맞아 간다 싶으면
다시 무너졌다.
가장 잘하던 아이는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그 자리에서 드러눕기도 했고,
감기가 돌면
아이들이 하나둘 빠졌다.
다시 모이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알게 됐다.
이건 맞춰 가는 일이 아니라
버텨 가는 일이라는 걸.
그러던 어느 날,
한 학부모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번 재롱잔치에는
아이를 참여시키지 않겠다고.
이유는 단순했다.
의상비가 부담된다는 것.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누구보다 먼저 나와 춤을 추던 아이였다.
하지만
그 아이를 빼야 했다.
연습할 때도
따로 두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아이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의상비를 대신 내줄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 마음이 혹시 상처가 될까 봐
끝내 말하지 못했다.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만 모른 채로.
나는 그저
아이가 눈치채지 않기를 바라며
연습을 이어 갔다.
그리고 재롱잔치 당일.
어린이집에서 리허설을 하고,
대관한 장소로 이동해 또 한 번 리허설을 했다.
난방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
계속 마음이 쓰였다.
리허설 내내
답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고,
그걸 본 선생님들은 말했다.
“얘네는 그냥 의상만 입고 서 있어도 귀여워.”
그 말이 위로가 됐다.
아이들은 낮잠도 제대로 못 잔 채
낯선 무대에 섰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얼어붙었고,
누군가는
갑자기 세상 신난 얼굴로 뛰어다녔다.
완벽과는 거리가 먼 무대였다.
엉망이었고,
난장판이었다.
그런데도
그 어느 반보다 박수는 컸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끝까지 서 있었다.
무대 위에 아이들이 서면
담임은 무대 아래 자리를 잡는다.
부모님의 시야를 가리지 않기 위해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들보다 더 크게 춤을 춘다.
재롱잔치의 마지막은
모든 아이들이 함께 모여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지만,
낮잠도 못 잔 우리 반 아이들은
먼저 하원을 시작했다.
하원 지도를 하며 만난 부모님들이
조용히 말을 건넸다.
“선생님의 재롱잔치를 본 것 같아요.”
“고생 많으셨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한 달 넘게 쌓여 있던 시간이
한꺼번에 풀렸다.
돌이켜 보면,
그날의 난장판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애써 버텨 낸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