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같은 어린이집에서 자란다는 것
어린이집에서 아이는 혼자 자라지 않는다.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자리도 함께 움직인다.
교사는 교사로만 머물지 않고,
보호자는 보호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역할들이
한 공간에서 겹친다.
조카가 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리는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두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옆반 교사였고,
그 아이는 다른 반의 아이였다.
담임도 아니고, 보호자도 아니었다.
그저 같은 어린이집에 있는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같은 어린이집에서 자란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함께 겪는 일이라는 것을.
문 하나 앞에서 발이 멈추던 순간이 있었다.
울음소리를 들으며,
들어가야 할지 돌아서야 할지
망설이던 날도 있었다.
식사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한쪽이 뜨거워지던 순간도,
아이의 하루를 듣다가 그 뒤에 있는
가족의 생활까지 떠올려버리던 날도 있었다.
복도에서 조카의 이름이 들리면,
걸음이 잠깐 느려졌다.
그리고 내가 가까워질 때면,
대화는 조용히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지금,
누구의 자리에서 서 있는 걸까.
동료 교사로서의 자리인지,
조카의 고모로서의 자리인지.
어쩌면 그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늘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나는 아이들을
공평하게 바라보아야 했다.
어떤 아이에게도 더 가까운
시선을 두지 않으려 애써야 했다.
하지만 고모로서의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조카의 울음이 들리면 귀가 먼저 반응했고,
이름이 들리면 걸음이 멈췄다.
그 마음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마음 때문에 내 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문 앞에서 멈춰 섰고,
어떤 날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 멈춤이 외면이 아니라는 것을,
그 침묵이 무심함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알게 됐다.
아이를 돌본다는 건 늘 분명한 선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개입하지 않는 선택이 필요하고,
때로는 모르는 척 지나가는 선택이 필요하다.
겉으로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나는 내 자리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의 담임이 아니었다.
그래서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의 보호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의 고모였다.
그래서 마음만은 쉽게 멀어지지 않았다.
같은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그 사실을 여러 번 배웠다.
아이의 하루는 교실 안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어른의 자리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것.
우리는 각자의 역할로 서 있지만,
때로는 그 역할들이 한 사람 안에서 겹쳐진다.
그 겹침은 나를 여러 번 망설이게 했고,
여러 번 멈추게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은 나를 조금
다른 어른으로 만들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아이의 담임은 아니다.
그러나 같은 어린이집에서 함께 지나온 시간은,
내가 어떤 어른으로 서 있어야 하는지를
조용히 남겨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