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에서 일하는 마음

PART 3. 다정함 이후의 침묵

by ItMiRi

관계가 드러난 뒤,

다정함과 침묵은 다른 얼굴을 갖는다.


그 선생님은 원래 내게 다정한 사람이 아니었다.


같은 교사로 마주칠 때면

필요한 말만 짧게 오갔다.

인사를 안 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먼저 말을 붙이는 일도 거의 없었다.


나는 그 거리감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는 각자의 반이 있고,

각자의 일이 있고, 가까운 동료와 그렇지 않은

동료가 나뉘는 일도 흔하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말투가 달라졌다.


더 밝게 웃고,

더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사소한 안부를 먼저 물었고,

조카 이야기를 할 때면

표정이 유난히 다정해졌다.


처음에는 내가 예민한가 싶었다.

사람 사이의 온도가 달라지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변화가 시작된 시점을 떠올리면

마음은 자꾸 한 방향으로 기울었다.


내가 그 아이의 고모라는 걸 알게 된 뒤였다.


반가운 일일 수도 있다.

내 조카를 맡은 담임이 더 친절해졌다면,

가족 입장에서는 오히려 안심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친절 앞에서 조심스러워졌다.


따뜻한 말이 기분 좋기보다 먼저 무게를 가졌다.

이 다정함은 누구를 향한 것일까.
나일까.
아이일까.
아니면 관계가 드러난 뒤에야 생긴

어떤 거리일까.


교사에게 친절은 중요한 능력이다.

아이에게도,

보호자에게도,

동료에게도 필요하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알게 된다.

친절은 늘 같은 얼굴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친절은 마음에서 나오고,

어떤 친절은 관계를

매끄럽게 하기 위해 덧붙여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둘은 분명하게 나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선생님의 다정함을

쉽게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내가 전보다 편해 보여서였을 수도 있고,

조카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은 계속 불편했다.


어린이집 안에서

나는 두 사람으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 교사인 나와, 조카의 고모인 나.


동료로만 있을 때는 없던 친절이,

가족이라는 관계가 드러난 뒤에 생겼다는

사실은 나를 자꾸 ‘위치’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직접적인 보호자는 아니지만,

보호자 쪽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그걸 알아버린 뒤에는

그 선생님의 말 한마디마저

예전처럼 가볍게 들을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친절이 다정하기만 한 것은 아니구나.


누군가의 미소가 편안함이 아니라

긴장이 되는 순간도 있다.


특히 그 미소가 관계를 알고 난 뒤에

생긴 것이라면 더 그렇다.


그 불편함은 다른 장면에서도 이어졌다.


어느 날 복도에서 몇몇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교사들의

짧은 대화는 흔한 풍경이다.


그날, 내 조카의 이름이 들렸다.


귀가 먼저 반응했다.

걸음이 잠깐 느려졌다.


이어지는 말이 더 들릴 것 같았는데,

내가 가까워지자 대화의 흐름이 툭 끊겼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전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아마 별 뜻 없는 이야기였을 수도 있다.

낮잠 이야기였을 수도 있고,

식사량에 대한 가벼운 관찰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들었다고 해서 굳이 이어갈 필요가 없는,

그런 종류의 대화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정리되지 않았다.


내가 지나가자 바뀐 이야기.

그 짧은 공백 하나가 오래 남았다.


무슨 말을 하고 있었을까.
왜 멈췄을까.

들어도 되는 이야기였다면 그대로 이어졌을까.


이 질문들은 답을 원하면서도,

사실은 답이 없다는 걸 안다.


나는 끝내 그 대화의 앞과 뒤를 모른다.


모른다는 사실은 때로 아무것도 아니지만,

때로는 상상을 자라게 한다.


특히 그 대상이 내 가족일 때는 더 그렇다.


예전 같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장면이다.

교사들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누가 지나가면 주제를 바꾸는 일은 드물지 않다.


맥락이 필요한 이야기를 굳이 이어가지 않으려는

배려일 수도 있고,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려는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의 아이가

그 이야기 속에 있을 때는 다르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 대화의 밖에

서 있는 사람이 된다.


같은 교사이면서도,

동시에 듣지 않아야 하는 쪽 사람처럼.


그 감각은 이상했다.


나는 여전히 이곳의 교사인데,

조카의 이름이 들어가는 순간 대화의 안쪽에서

한 발 밀려나는 기분.


그때 알게 됐다.


가족이 된다는 건 보호하고 싶은 마음만

커지는 일이 아니라,

들리지 않는 말 앞에서 더 자주 상상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어쩌면 상처는 들은 말보다,

끝내 듣지 못한 말에서 더 오래 남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그 선생님의 진심을 모른다.


그 친절이 어디를 향한 것인지도,

그날 멈춘 말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린이집에서 관계는

아이만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어른들 사이의 거리와 말투,

그리고 침묵까지도 아이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조금씩 달라진다.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예전처럼 단순하게 믿을 수 없는 것들이 생겼다.

누군가의 친절을 받으면서도

그것이 향하는 방향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누군가의 침묵 앞에서는

그 안의 뜻을 상상하게 된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다정한 말 앞에서 가끔 멈칫하게 된다.


고맙다고 웃으면서도 마음 한쪽으로 묻게 된다.


이 친절은 지금,

누구를 향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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