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ced Assembly Center
머세드에 Merced Assembly Center라는 곳이 있다. Assembly Center '집단 수용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럼 머세드 집단 수용소는 누구를 억류하였던 곳일까?
1941년 12월에 일본의 펄하버 (진주만: 하와이) 공격을 시작으로 미국이 2차 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Anti-Japan의 물살이 높아지고 미국정부에서는 1942년부터 일본계 미국인들을 수용소에 억류를 하기로 결정한다. 캘리포니아에서도 15군데에 이 수용소를 만들었는데 머세드도 그중의 하나이다. 일본인 수용소들은 주로 캘리포니아 내륙 쪽에 위치한다. 이러한 곳들은 당시 거의 사람들이 드물게 살고 있는 농촌지역 들이다. 4600여 명 정도가 여기에서 수용되었다고 한다.
당시 캘리포니아는 물론 미국 전역에 이런 일본인 수용소가 있었고 11만 명 정도가 수용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전쟁 전에는 그냥 미국인으로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고 있다가 갑자기 적국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재판 없이 구금된 것과 같은 수용생활을 하여야 한다. 그들은 전쟁이 끝나는 1945년까지 수용 생활을 하게 된다. 아래 사진은 당시 기차를 타고 머세드에 도착한 일본계 미국인들의 모습 머세드 수용소의 모습이다. 저당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이 사건은 미국 스스로가 인정하는 미국 역사에서 수치스러웠던 일 중의 하나로 언급된다. 누구보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미국이 같은 미국사람인데 단순히 혈통 하나로 사람을 감금시키다시피 하였으니 말이다.
2차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을 때 대부분의 국가들은 모여서 이전처럼 패전국을 어떻게 식민지화할 것 인가에 대한 논의를 할 것으로 기대했다고 한다. 대신 국제적으로 상호 교환을 윤활하게 하는 금융체제인 브렌트 우즈체제를 제시함에 따라 제국주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도 할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전쟁은 승리를 한다 해도 들어가는 비용에 비해 얻는 것이 적다는 것을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에 현대로 오면서 전쟁을 가능한 한 피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말이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는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뒤안길에서 힘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 머세드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