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시간,
당연하지 않은 시간

당신의 점심시간은 몇 시간인가요?


오늘 점심은 간만에 외식이다. 시장에서 사 온 찬거리도 애매하게 남아있고, 날도 더운지라 오늘은 밖에서 먹자며 탐디와 동네 국숫집을 찾았다. 뜨끈한 라오 쌀국수 카오 삐약을 시키면 각종 야채가 한 바구니씩 딸려 나온다. 한 그릇씩 시킨 국수에 취향 따라 야채를 팍팍 넣고 그 국물에 고추기름을 살살 풀고 라임즙도 조금 짜서 넣으면 입맛에 딱 맞는 칼칼한 국수가 된다. 열심히 땀 흘리며 국수를 먹는데,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나둘씩 나오는 게 보였다. 삼삼오오, 걷거니 뛰거니 하며 어디론가 가는 동네 꼬맹이들. 얘네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지?



“애들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밥 먹으러 가지.”
“네? 어디로요?”
“집으로 가겠지.”
“어? 집에 갈 수 있는 시간이 되나? 우린 도시락 싸서 다녔는데.......”
“라오는 학교 점심시간이 2시간이라서 집에 가서 점심을 먹어. 아님 부모 일터로 가서 같이 먹기도 하고.”


아, 그렇구나. 라오는 점심시간이 2시간이다. 도시의 사정은 계속 변한다지만, 시골 마을에서는 아직 2시간의 점심시간이 계속 지켜진다고 한다. 중·고등학교는 시내에 있기도 하지만, 초등학교의 경우 대부분 마을 안에 있어 마을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집이 가까운 아이들은 걸어서, 아니면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간다.


“그럼 아이 부모 둘 다 밖에서 일하면 밥은 어떻게 챙겨 먹어요? 혼자 차려 먹나?”
“에이, 부모도 점심이 2시간이니 집에서 밥을 먹을 수 있지. 오토바이 타고 오갈 수 있는 거리면, 집에 와서 가족들하고 같이 밥 먹고 쉬다가 다시 일하러 가는 거지. 아이들은 학교로 가고.”


아……, 순간 멍해졌다.



어른들도 점심시간이 2시간이라고?


당연히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1시간이라 여겨, 일터 근처에서 밥을 해결한다 생각해서 그리 물었던 거다. (이 문장에서 '해결하다'라는 동사에 속으로 밑줄을 그어본다. '먹다'와는 결이 살짝 다른 '해결하다'이다.) 부모 중 하나가 일을 나가면, 다른 한 명이 아이 밥을 챙겨줄 수 있다. 그런데 맞벌이 부부는 그럴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물론 라오 아이들은 굉장히 씩씩하기 때문에 혼자서도 잘 챙겨 먹을 거라는 건 이제 안다.)


그런데 가족 모두가 2시간의 점심을 갖는다고 한다.


푸딘댕 마을 초등학교에 다니는 예쁜 파숑에게도,
청소년센터에서 일하는 손재주가 좋은 엄마에게도,

시내 우체국에 다니는 사람 좋게 생긴 아빠에게도,

같은 120분, 2시간의 점심시간


아,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두 시간의 점심을 갖는구나. 그래서 가족이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같이 먹을 수 있구나.


아침에 지어놓은 찰밥과 밑반찬으로 간단히 점심밥을 먹으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나눌 수 있겠구나. 엄마한테 오늘은 누가 학교에 안 왔다고 얘기도 하고, 누렁이 미미 간식도 챙겨주고, ‘밥 먹었으니 좀 자야지’ 하며 낮잠도 즐기다가 다시 학교로 갈 수 있는 거구나. 누군가는 엄마 품에서 생떼를 쓰면서 학교 안 간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내는 왕위앙 푸딘댕 마을. 마을 초등학교에서 곧장 아랫길로 뛰어 내려가면 1분 거리에 남쏭(쏭 강)이 있어 아이들의 점심시간은 한층 더 알록달록해진다. 동네 꼬마 몇 무리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집으로 직행하는 게 아니라 남쏭으로 달려가 한참을 물에서 놀다 배고파질 때쯤 집으로 간다. 내리막길을 내달려 도착한 남쏭. 책가방과 옷가지들을 훌훌 벗어 자갈밭에 던져두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속으로 풍덩 들어간다. 이거 하루 이틀 물에서 논 솜씨가 아니다. ‘팔딱팔딱’, 아이들의 손짓과 발짓에 깃든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힘이 내는 소리.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 한 구석이 환해지는데 그런 나를 보고는 “버 옌~ 버 옌~ (안 차가워요., 안 차가워요.)” 하며 물에 들어오라 손짓한다. 그럼 오늘도 나는 못 이긴 척하며 기꺼이 물에 들어간다.



아이들과 남쏭에서 함께 놀던 한 때


그래도 누구 하나 무리해서 더 놀려고 하지 않는다. 이건 ‘특별한 놀이’가 아니라 ‘매일의 놀이’이기에, 겨우 한 번 누리는 ‘특별함’이 아니라 ‘일상’이기에 적당히 놀았다 싶으면 물기를 탈탈 털고 다시 집으로 향한다. 밥 먹으러 가야지.



눈을 감고 그려본다.

가족들이 하나 둘 모이는 시간,

마당으로 들어오는 아빠의 자전거,

쏟아지는 햇빛을 가리려고 우산을 쓰고 걸어 들어오는 엄마,

집으로 오는 가볍고도 빠른 아이의 발걸음,

그 반가운 소리들에 단잠에서 깬 누렁이가 방정맞게 꼬리를 흔들며 식구들을 반기는 오후, 점심시간



기초학문 부족, 일방적인 수업방식, 예체능 교육의 부재,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교원 교육 부분 등. 아마 교육학적 접근으로는 라오의 교육 현실은 문제 투성일 테고, 아쉬운 점이 한두 개가 아닐 거다. 그러나 점심 2시간의 힘, 그 힘은 어마어마하다. 어려서부터 꾸려가는 넉넉한 시간의 경험, 그런 여백의 시간을 살아온 경험이 주는 힘이 있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도태될 거라 여기고, 무료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못 견뎌하는 어느 도시인들과는 다른 그들이 가지고 있는 빈 시간을 다루는 힘. 그것은 바로 일상을 밀고 가는 힘. 일상을 밀고 가는 그 힘은 이런 열려있는 시간을 스스로 살아온 경험이 만들어내었으리라.


왜 나는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당연하다 생각했던 걸까?

나의 12년의 학창 시절이 그리하였으므로, 20대를 보낸 일터에서의 시간도 마찬가지였으므로,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당연했던 시간


그 당연했던 시간,

그러나 당연하지 않은 시간


이제 나는 다른 시간을 알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