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디서 왔소?

#4. 우리 곁에 있는 당신들의 이야기를 엿들어 봅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당신은 어디서 왔소?

내 고향은 장성 어느 작은 마을

식구들과 뿔뿔이 헤어져 이곳에 왔소.

그곳에서는 내 이름도 있었다오.

지금은 없어져버렸지만.


바람에 춤을 추었고, 비를 맞았고, 얘기를 했다오.

걸리는 것 없이

시간의 틈을 보며 자라왔다오.

깊게 자라왔다오.


아참, 내 정신 보소.

그래서 당신은 어디서 왔단 말이요.


나는 갯가 물소리 들리는 산골에서 왔수다.

여기가 어딘지 어안이 벙벙하오.

이곳의 수선함이 재미진 건지, 어쩐지 모르것소.

처음 본 것들 투성이요.

얼마나 계셨소.


처음엔 이곳에서의 날들을 수많은 손가락으로 헤아렸지만

돌아갈 길 막막하여 그만두었다오.

그저 열 번이 넘는 봄을 맞았다오.

그저 스무 번이 넘는 겨울을 나았다오.


그저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고 시끄러운 것들이 많아졌소.

그러나 내 주름은 기억한다오.

나조차 보지 못하는 주름이지만, 느낄 수 있다오.

내 안의 그 둥그런 속 주름을.


이보시오.

오래 살아가는 동안 무얼 하셨소 그래.


나는 그저 분주한 하루들을 내려다보고 있소.

돌아갈 기대는 저만치 버려둔 지 오래,

지난 여름장마,

난데없는 벼락에 고사한 옆 지기가 있소.

사실 어떤 생이 더 좋은지 모르겠소.

새둥지 얹을 자리 내주는 거에 족할 뿐이요.


그저 사는 동안 사는 거지.

다 이유가 있지 않겠소.






작년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나오는 길에 한 선생님께서 지나가는 말로 얘기를 하셨다.

"거리의 가로수처럼 불쌍한 것도 없지요."


그때부터 시작되었을까? 너무 당연해서 보이지 않던 당신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당신들의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시 어느 봄날. 시내버스를 타고 나른한 봄볕을 즐기고 있는데 이곳저곳 가지치기가 한창 이더라. 자기들의 필요로 인해, 아니지, 우리들의 필요로 인해 당신들을 부러 데려와 놓고 맘껏 자랄 수 있는 자리 하나 마련해주지 않고 인간의 필요에 의한 가지치기를 하는 모습. 당신들이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누군가에 의한 가지치기는 없었겠지.


당신들의 품이 얼마나 넓어질지 가늠하지 않고 멋대로 데려와서는 뿌리를 다 드러내 놓게 만드는 사람들, 그래 우리들. 아래로 아래로, 옆으로 옆으로, 뻗어가는 당신의 뿌리에는 관심이 없었지.



가끔 길을 걸으며 당신들의 깊고 너른 마음들을 생각한다. 당신들의 둥글고 깊은 속주름인 나이테와 포기하지 않는 뿌리를 생각한다. 당신들의 마음을 상상해본다는 거, 참으로 오만한 발상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당신의 이야기를, 당신들의 대화를 상상해본다. 그러다 문득 들리는 말,


"그저 사는 동안 사는 거지. 다 이유가 있지 않겠소."


어쩐지 당신들이 내게 이런 얘기를 건네주는 것 같아서, 그래도 살아보라고, 뭔가 이유가 있겠지 않냐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끄덕이고 계속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