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의 실패를 했지만 다른 하나의 가치를 지켜낸다는 것
영화 <인턴>에서 시니어 인턴 '벤'은 바쁘고 혼란스럽게 돌아가는 회사에서 여유롭고 연륜 있는 태도로 회사에 가장 중요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연애 상담을 하기도 하고, 일의 기본적인 부분을 알려주기도 하고, 인간됨의 기본적인 태도에 대해 모범을 보여주는 '벤'. 탁월함을 갖고 있는 튀는 직원은 아니지만 담담하고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둘 얻어간다. 물론 정말 필요한 일을 하기도 하고.
나는 이런 성실함이 좋다. 항상 뛰어나고 누구보다 잘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욕심도 너무 많고, 미친 듯이 노력할 때도 적잖이 있지만. '열심히'보다 '잘' 해야 한다는 흔한 말보다 한 발 한 발 '열심히' 해나가는 나와 그런 사람이 좋다. 응원하고 싶다.
매주 토요일 우리 집 상가 앞에서 채소를 파는 사장님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우리 집 상가 앞에 채소를 파는 사장님이 온다. 나는 매장을 두지 않고 이렇게 장판을 펴 장사를 하는 분들을 보면 딱 한 가지의 생각을 한다. '세금을 안 내겠네'라고. 그런데 이분은 좀 다르다.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사장님께서 채소를 판지는 꽤 되었다. 이분의 채소 장사엔 인상 깊은 포인트가 있다.
첫째, 성실함 그리고 열심히 사는 사람의 느낌.
매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앉아 장사를 하는 사장님의 성실함이 좋다. 만약 어떤 날 안 나오게 되신다면 궁금할 것 같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또한 전업으로 채소를 파시는 분 같지는 않은 느낌이 든다. 잘 모르지만 다른 본업이 있고 주말에 부업으로 채소를 파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아니 확신이 든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열심히 사는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둘째, 깐깐하기로 소문난 부동산 사장님이 기꺼이 자신의 마당을 내어준 흥미로움.
채소 사장님은 부동산 문 바로 앞에서 장사를 하신다. 토요일에 많은 사람이 방문할 수 있는 걸 감안하면 부동산으로서는 사실 불편할 수 있을 텐데, 기꺼이 내어준다. 두 분이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혹은 특별한 이야기 없이 그냥 암묵적인 동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부동산 사장님의 배려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리고 그렇게 남아있는 호기심 어린 감정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셋째, 부담스럽지 않음.
집 근처엔 큰 마트가 1곳, 유기농 마트 1곳, 슈퍼 2곳, 편의점 1곳으로 맘만 먹으면 채소를 살 수 있는 곳이 꽤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채소 사장님에게 많은 채소를 구매한다. 저렴한 가격, 갓 따온 채소의 싱싱함 같은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가장 큰 이유는 사장님의 존재다. '저 사람이 파는 채소'. 특별히 강요하지 않는 태도, 끊임없이 채소를 다듬고 정돈하며 움직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처럼 '성실하다'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감정과 의미가 섞여있다. 열심히 하다, 마음을 움직이다, 묵묵하다, 부담스럽지 않다, 포기하지 않다처럼. 나는 어떤 성실함을 갖추고 싶은지 생각해 보게 되는 채소 사장님의 장사가 한동안은 계속되었으면 한다.
1일 1 브런치 10일 만에 첫 실패
지난 23일부터 시작한 1일 1 브런치 쓰기를 한 지 10일 만에 어제 첫 실패를 했다. 10일 - 10일 - 20일 - 20일 -20일 이런 식으로 작은 목표를 세워 1년을 이어가자는 생각이었는데. 하하 10일 만에 나의 성실함엔 제동이 걸렸다.
이유는 저녁. 퇴사를 앞두고 회사에서 가장 의지하고 좋아했던 선배와 저녁을 함께 했다. 퇴근 직전 약간은 충동적인 마음으로 저녁을 제안했다. 이제 곧 퇴사를 하면 만날 시간이 정말로 적어지고 쉽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후회하고 싶지 않아다. 이런저런, 그땐 그랬고 이땐 이랬지 식의 이야기를 하며 과거도 회상하고 현재도 돌아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제안했기에 저녁도 샀고 돌아오는 길에 정말 오랜만에 택시도 탔다. 그래서 절약을 다짐한 이래 처음으로 하루에 5만 원을 썼다. 절약에도 실패한 하루. 하지만 많은 게 남았다. 이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고 가치가 충분하다. 물론 내가 이루려는 목표가 분명하기에 돈과 시간에 대한 분배를 좀 더 계획적으로 해야겠단 생각은 든다. 그렇지만, 나에게 소중한 관계에 대한 가치는 지켜나가고 싶다. 이것저것을 다 가질 수 없다 하더라도. 내 마음의 가치 있는 일에는 투자하고 싶다.
두 가지의 실패를 했지만
나의 또 하나의 가치를 지켜낸
소중하고 따뜻한 하루
나는 성실하게 이런 나의 하루들을 만들어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