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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랑쓰 Jul 07. 2024

어른이 되어 다시보는 순풍 산부인과

집에서 혼자 점심 끼니를 때워야 할 때에는 뭔가 심심하다. 이럴 때는 아무생각없이 볼 수 있는 시트콤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속세를 잊고 별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시트콤으로 김병욱PD의 작품들을 좋아한다. 예전에는 하이킥 시리즈를 즐겨 봤는데 (1, 2, 3 모두 다봤다), 에피소드 수가 꽤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에피소드는 2회차는 돌았던 것 같다. 그 뒤에 이어서는 웬그막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도 역주행 했고 이것도 상당히 재미있게 봤다. 요즘에는 유튜브에서 방송국들이 각 에피소드별 하이라이트 요약본을 편집해서 올려주는데 길이도 10분 내외로 적당해서 딱 밥먹는 시간에 간단하게 보기 적당하다. 오래된 시트콤을 OTT나 VOD와 같이 인터넷을 찾아보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렇게 역주행을 하다보니 결국 유튜브에 순풍산부인과까지 알고리즘에 걸려서 뜨게 되었다. 오... 순풍산부인과라... 순풍산부인과가 방영된 시기는 1998~2000년이다. 딱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인 시절이다. 너무 어렸을 때인지라 뭐 하나 에피소드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는 않지만 캐릭터들이 매우 강렬했기에 박미달, 박영규, 오지명, 선우용녀 등 각 캐릭터들의 인상은 확실히 기억이 났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시트콤이라 지금 다시보면 공감이 갈지는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에피소드 하나를 클릭해 본다. 


랜덤으로 고른 에피소드였는데, 사위로 나오는 박영규가 자기는 돈한번 낼 생각을 안하고 맨날 주변에 얻어먹기만 하는 에피소드였다. 저런 뻔뻔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해내는 박영규 배우님은 다시한번 대단하다고 느낀다. (정도전에서 이인임을 연기한 박영규 배우님을 떠올려보면 소름이 돋을 수 밖에 없다) 

생각보다 재밌다. 내친김에 에피소드를 2~3개를 더 연달아서 봤는데 내 걱정과는 다르게 시대상에 대한 위화감이 거의 없이 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순풍산부인과는 나의 밥메이트가 되어 주었으며 지금은 유튜브에 올라온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1회차는 완료했고, 특별히 재밌다고 느낀 회차들은 2~3회차까지도 다시 볼 정도로 아직도 자주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럼 나는 왜 순풍 산부인과가 재미있었을까? 벌써 20년도 지난 시트콤이 난 왜 재밌었는가?

 첫째로는 시대의 흐름과 관계없는 '병맛' 코드이다. 캐릭터들의 티키타카는 물론이고 에피소드의 내용 자체가 요새 흔히 말하는 '병맛'와 매우 닮아있다.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지만 결국 캐릭터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들은 상식에서 조금 벗어난 행동들이다. (예를 들어, 미달이가 그린 그림에 물을 조금 흘렸는데 그걸 말리겠다고 전자레인지에 넣어 버려 그림을 태워버리는 등) 물론 이런 전개는 시트콤이라서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병맛' 전개가 가능해서 좀 더 마음놓고 아무생각 없이 볼 수 있게 되는 요소인 것 같다.  이런 '병맛'은 시대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계속 사람들에게 주는 재미의 본질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둘째로는 나처럼 나이든 사람 한정이지만 묘하게 과거 시대의 회상을 하게하는 것들이다. 소위 "그땐 그랬지" 라는 말이 나오게 하는 장면들이다. 순풍 산부인과에는 지금은 없지만 당시에는 있었던 사회적 풍경들이 몇가지가 묘사가 된다. 몇가지 생각나는대로 써보자면,


-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 집에 부모님이 안계시면 자연스럽게 친구네 집에 가서 놀다가 친구 엄마가 주시는 저녁까지 먹고 집에 오는 것

- 한 집에 동네사람들이 모두 모여 즐겁게 저녁을 먹는 모습들

- 일가친척을 모두 한집에 부르고 집안 여자들만 부엌일과 음식장만에 여념없는 풍경들


특히 지금은 상상도 하지 못하지만 내가 어렸을 적 아버지도 집에서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시면서 TV를 보시곤 했었다. 20년이 지나면서 까마득하게 잊혀졌던 기억이지만 시트콤을 보니 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점이 헛웃음을 나오게 하면서 묘하게 그 어린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는 것 같다. 지금은 분명 사라져서 다행인 풍습들도 있고, 사라져서 아쉬운 풍습들도 있지만, 그래도 시트콤을 보는 그 순간만큼은 내 어린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즐거움을 느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항상 빠르게 바뀌어가지만 그래도 세월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는 '가치'도 반드시 존재하는 것 같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나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준 순풍 산부인과, 웬그막, 하이킥의 김병욱PD님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도 세월이 지나도 누군가에게 변함없는 가치를 만들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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