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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Breeze Oct 13. 2023

부정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

결국 해야 하는 준비

어제 넌 멀쩡했는데 오늘 넌 갑자기 의기소침해 있다. 물 먹은 솜처럼 축 쳐져 있어서 힘이 나 보이질 않는다.

뭐가 문제일까. 어제 병원을 다녀와서 놀란 걸까. 또 어딘가가 아픈 걸까. 비디오를 되돌리듯 지나간 일들을 떠올리며 원인을 찾는다.


확실하지 않은 일에는 불행한 결과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를 멋대로 정해버리고 두려워한다. 착잡하다. 이럴 때면 네가 그냥 말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아프면 어디가 아프다고. 힘들면 뭐 때문에 힘들다고.


지쳐있는 너를 두고 회사를 가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엄마에겐 오늘 병원에 다녀오면 결과가 나오자마자 말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다행히 나이 때문에 관절이 약해져서 그런 거라고 다른 큰 문제가 생긴 건 아니라고 한다. 휴. 가슴을 쓸어내린다.


너는 매일이 다르다. 어렸을 땐 하루하루 쑥쑥 커서 옷이 순식간에 짧아지곤 했는데 지금은 하루하루 쇠약해져만 간다.

나이 든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사람 중에 오랜만에 본가에서 전화가 오면 혹시 나쁜 소식일까봐 걱정한다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자연스레 이별까지 생각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0살이 넘은 강아지가 있듯이 너도 그만큼 오래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는다.


만약 네가 아파서 매우 고통스러워한다면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나는 절대로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고통스러울 것이란 걸 잘 알면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주변인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죽음이라는 개념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다. 곁에 없다는 사실을 수용하기 어려워 소멸이 아니라 다른 곳에 존재할 것이란 믿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나는 너의 죽음이 두렵다. ‘모든 생명은 죽는다’란 명제가 참이기에 우리에게도 멀어져야 하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애써 부정한다.


강아지가 죽으면 현행법 상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려야 한다고 하더라. 몇년을 같이 산 가족을 그렇게 보낼 수 없어서 장례식을 치뤄줬다는 어느 지인은 아주 작은 가루가 된 모습을 보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만약 피하고자 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방법도, 행동도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바라는 점은 있다. 내가 없을 때 떠나지 않으면 좋겠다. 그리고 낮잠을 자는 것처럼 편안하고 부드럽게 찾아오길 바란다.

네가 무섭지 않게. 친절하게.


그리고 혼자 외롭게 오래 우릴 기다리지 말고 떠나게 된 곳에서 낳아준 엄마랑 친구들 만나서 즐겁게 지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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