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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Breeze Dec 21. 2022

알람시계

강아지는 뚠뚠 오늘도 뚠뚠 달콤한 잠을 자네

해가 짧아져 아침 7시가 돼도 어둑어둑할 때면 수험생 때 항상 네가 나를 깨웠던 때가 생각난다. 매일 5시 반 정도에 일어나야 했는데 아침잠이 너무 많아서 5분만 더 10분만 더를 외치며 이불 밖에 나가길 꺼렸다.

이런 내게 정말 효과적인 알람시계가 너였는데 “누나 깨워”라는 엄마의 말 한마디면 넌 침대 위로 점프해서 내 얼굴을 막 핥았다. 축축한 침에 세수를 당하면 더 이상 잘 수가 없었다. 겨우 상체를 일으키면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뿌듯해하는 표정으로 꼬리를 흔들었다.


요즘 너의 주말 아침 루틴은 온 가족의 방을 돌아다니면서 간밤 사이 잘 살아있었는지 생사확인을 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리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원하는 방에 들어가 함께 숙면을 취한다.

침대 위로 올라오면 사람의 목에 고개를 올리고 품에 안기는데 자리를 잡은 게 만족스러운지 냠냠 입맛을 다신다. 그리곤 쌔근쌔근 잠든다. 따뜻한 체온에 코골이 asmr까지 더해지면 이제 일어나야지 생각해도 저절로 다시 잠에 빠져든다. 순식간에 오전이 오후가 되어버리는 마법이다.

처음엔 내 목에 고개를 기대다가 팔을 베고 곧 내 베개를 차지한다. 베개를 쓰는 게 이렇게 자연스러운가 싶을 정도로 사람처럼 누워서 잔다. 가끔은 잠꼬대도 하는데 달리고 있는 중인지 발을 움직이기도 하고 누구랑 싸우는지 낑낑거리기도 한다. 나도 잠버릇이 고운 편은 아닌데 이 점은 또 언제 보고 배웠나 모른다.


그러다 침대에서 계속 미적거리는 것이 죄책감이 느껴져 “일어나야지 이제”라고 토닥이며 말하면 누워있던 너는 단숨에 일어나 꼬리를 흔들며 침대에서 내려달라고 어리광을 부린다. 내가 안아서 침대에 내려주면 그제야 주말 아침 루틴이 끝난다. 과거와 서로의 역할이 달라진 지금이다.

이 루틴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는데 무조건 자고 있는 사람이랑 같이 일어나야 한다. 다른 누군가가 그냥 침대 근처에만 와도 너는 짖으며 저리 가라고 한다. 명예 수면지킴이 이런 건가 보다.


넌 일어나는 시간은 마음대로여도 자는 시간은 일정하게 지키는 바른생활을 산다. 밤 9시쯤 시작하는 드라마가 끝나면 엄마랑 같이 방에 들어가는데 드라마 종료 시간은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엄마 무릎에 기대어 함께 TV를 보다가 드라마가 끝나도 TV를 끄지 않으면 소파 아래로 내려와서 왜 방으로 들어가지 않냐고 쳐다본다. 딱딱 맞는 타이밍에 사실 시계를 볼 줄 아는데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닌지 의심될 때가 있다.

방안에 재우고 나오게 되면 다시 쪼르르 나와서 왜 안 들어오냐고 기다려서 못 이기는 척 따라 잘 준비를 해야 한다. 주변 사람의 건강한 생활도 신경 쓰는 착한 아이다.


낮잠 자는 것도 네 하루의 중요한 일과다. 신중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적당한 곳에 땅을 파듯 앞발로 퍽퍽 바닥을 긁어 자리를 만든다. 그리고 가장 푹신하고 따뜻한 명당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면 배가 보이도록 누워서 휴식을 취한다. 대부분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자는 포즈도 워낙 독특하다 보니 잘 때도 존재감이 엄청나다.


이렇게 하루의 반 이상이 수면시간으로 채워져서 곤히 자는 모습을 볼 때가 많다. 평화로움을 시각화하면 이런 그림이지 않을까. 세상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네 그런 모습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별 고민 없이 행복한 모습이 때론 부럽다. 너처럼 간식 하나 단잠 하나에 기뻐할 수 있는데 나는 왜 거창한 것을 추구하며 먼 곳만 보는지 되돌아본다. 어깨의 짐이 무겁다면서 놓지 못하고 무거운 짐을 하나라도 더 들려고 애를 쓴달까. 너라면 도와달라고 예쁜 눈으로 꼬리를 흔들었을텐데.

가끔은 내 복잡한 방식보다 네 단순한 방식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잘 자 오늘도.

누난 일찍 일어나서 껌값 벌어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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