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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 Oct 26. 2022

[배우입니다] 나의 꿈이 세상에 닿을 때

가톨릭성모병원과 함께한 촬영 이야기

촬영 스틸컷

올해 6월이었다. 암 수술을 하고도  나를 끈덕지게 괴롭히던 후유증 하나가 있었다. 때문에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원인 모를 통증을 잡느라 애를 썼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고 결국 나는 다시 대학병원을 향해야만 했다. 기말시험을 치고 학기가 끝난 날, 모두가 종강의 기쁨을 누릴 때 나는 가톨릭성모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릴 때 봤던 인터넷 소설을 보면 몸이 약한 여자 주인공이 쓰러져 남자 주인공이 그녀가 의식을 잃은 사이 재빨리 응급실로 향하는 클리셰 중 클리셰의 장면에 종종 등장하는 대사가 있었다. ‘아… 눈을 뜨니 병원 천장이었다. 지긋지긋해. 코를 찌르는 병원 냄새’와 같은 대사 말이다. 그런데 병원을 내 집 드나들 듯 다니던 언젠가부터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그 대사가 클리셰가 아니었다. 지긋지긋한 현실이 되어버렸지.

정말로 병원에 가면 나는 특유의 냄새가 있다. 통증은 지속될수록 무뎌지는 게 아니라 예민해진다고 했던가. 나에게 냄새의 존재는 꼭 그러했다. 남들이 맡지 못할 때도 나한테 만큼은 강렬하게 다가와 머리를 헤집어놓는 그런 골치 아픈 존재 말이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돼지가 도살장 끌려가듯, 누가 뒤에서 지옥불에 나를 밀어 넣듯, 얼굴을 잔뜩 구기며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날, 머리를 찌르는 듯한 병원 냄새에 또 한 번 눈을 질끈 감은 날 말이다. 그날, 성모병원에서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검사를 했고 치료를 하며 여름을 보냈었다. 아주 지긋지긋한 여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 그 여름의 끝자락에 있었던 일이다.
더위가 가시고 태풍이 불어올 때쯤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기 가톨릭성모병원인데요”
병원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또 검사 결과에서 이상한 무엇인가가 나온 걸까, 또 어디가 잘못된 걸까, 이번엔 어디가 문제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나는 길 한복판에서 우두커니 멈춰 섰다.
그런데 그 뒤에 들려오는 말에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이정연 배우님 맞으시죠?”
“네…? 그런데요?”
병원에서 ‘환자’ 이정연이 아니라 ‘배우’ 이정연을 찾다니. 이게 무슨 일이람.
“아 프로필 보고 연락드렸어요. 성모병원에서 촬영하는 영상에 오디션을 봐주셨으면 해서 연락드렸습니다. 혹시 오디션 봐주실 수 있으세요?”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성모병원 측에서 영상을 필요로 하는데 담당 제작사에서 내 프로필을 보고 배우로 함께 해줬으면 해서 왔던 연락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환자 이정연’ 말고 ‘배우 이정연’ 말이다.

오디션은 다른 작품과 다를 바 없었다. 늘 그렇듯 설정된 캐릭터에 맞는 톤을 가지고 그에 알맞게 연기하기. 제작진 측에서 원하는 니즈에 최적화된 배우임을 임팩트 있게 보여주기. 그런데 이번 오디션이 특별했던 건 그 후 제작진과 나눈 이야기였다.

“사실 가톨릭성모병원 이름을 걸고 찍는 촬영이라 지원했어요. 사실 제가 몇 달 전에 암 수술을 했거든요. 그리고 수술 후에 남은 후유증 검사와 치료를 성모병원에서 했어요. 병원이라는 공간은 저에게 참 특별하거든요. 지금 제가 이렇게 말을 하고, 웃을 수 있고, 오디션도 보게 해 준 그런 고맙고 감사한 존재예요. 그래서 꼭 제가 찍고 싶습니다.”

그렇게 나는 오디션에 합격을 했고 영상 촬영도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얼마 전에 완성본을 받아봤다. 느낌이 새로웠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많이 울컥했다. 불과 몇 달 전엔 환자로 이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이 병원을 대표하는 영상 속 배우로 있다니. 감회가 남달랐다. 촬영하기 몇 달 전, 울적한 기분으로 병원에 끌려가 여름 내내 했던 검사들과 치료들이 생각났고 잘 이겨내 준 나에게 고마웠다.


 지금처럼 화면 속 배우로 내가 있기까지 성모병원 말고도 정말 많은 의료진들의 손길을 거쳐왔다. 투병에 지쳐 눈물을 뚝뚝 흘릴 때 자신의 고통처럼 위로해주던 의사 선생님. 잘 이겨낼 수 있다며 늘 웃어주던 간호사 선생님, 심지어 지루한 병실에 내내 있는 동안 말동무가 되어준 간호학과 실습생들까지. 아직까지도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이번 촬영은 내가 투병을 하며 병원에 있었던 모든 순간, 내 옆을 든든하게 지켜 준 그들을 위한 촬영이었다. 내가 그들에게 받은 사랑을 이 영상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대사를 외웠고 촬영에 임했다. 더 뜻깊었던 사실은 그 보답을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연기를 통해 해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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