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있어
1. 본가로 가는 기차 안에서 이 글을 쓴다. 원래 내일 표를 예매했는데 표를 취소하고 오늘 일정이 끝나고 바로 본가로 갈 수 있는 저녁 표를 알아봤다. 내내 휴대폰을 붙들고 있어도 표를 구하지 못했는데 아버지가 딸의 부탁에 표를 잡아주신 덕에 무사히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중이다.
어제부터 연휴가 시작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숨 쉴 틈이 생긴 나는, 미뤄왔던 것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아침에는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읽었고 오후에는 사고 싶었던 옷들을 샀다. 그런데 즐거움은 잠깐, 너무 허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본가에 가고 싶었다.
연휴가 길어서 혼자 여유를 부리다가 본가를 조금 늦게 가겠다고 표를 늦게 끊었는데 여유를 부린다는 건 내 착각이었다.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저녁 기차표가 있는지 알아봐
지금처럼 나는 늘 돌아갈 곳이 있다. 이건 나를 가장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사실 중 하나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이제는 서울 생활에 적응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쿨타임이 찰 때면 나는 본가로 간다. 엄마아빠의 손 안에서 나는 다시 내가 살아가야 할 힘을 얻는다.
2. 차례를 지내고 혼자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는데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외할머니댁에 갈 건데 같이 가겠냐고 묻는 전화였다. 외할머니댁이라면 듣지도 않고 가겠다고 하는 원래의 나지만, 고민이 조금 길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빠에게 5분의 시간을 달라고 한 뒤 혼자서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결정을 내리기에 5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나는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겠다’고. 고민의 시간이 짧았던 명백한 이유가 있다. 몇 년 전 돌아가셨던 할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24살, 해가 바뀌고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호상’이라고 할 만큼 많은 연세에 돌아가셨지만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죽음이라는 것을 제대로 느낄 때쯤 소중한 누군가를 떠나본 것이 태어나서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례식장에서 3일을 꼬박 지새웠고, 그 앞에서 목 놓아 울어봤다. 화장터를 따라갔고 소중했던 나의 할머니가 한 줌의 재가 되어 나온 것을 봤다. 그때 나는 “있을 때 잘할 걸”이라는 가장 큰 후회를 했다.
삶의 모든 것이 유한하다는 말은 생각보다 잘 와닿지 않았다. 늘 다음이 있었기에. 그러나 죽음 앞에는 다음이 없었다. 죽음은 모든 것의 종지부를 찍는 일이었다. 그 앞에서는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문득 나는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마땅히 나의 핑계라는 걸 깨달았다. 연세가 많으신 외할머니와 나의 사이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할머니를 보냈을 때처럼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나의 수고로움을 선택했다.
이 글은 외할머니댁 집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는 카페에서 쓰고 있다. 그 와중에도 할 일이 많아 나는 노트북을 챙겨 들고 외할머니댁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로 무려 차를 타고 나와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잘 알고 있다. 지금 이렇게 내가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