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숨을 쉬며
얕은 숨. 이게 내가 요즘 들이쉬는 숨이었다.
쫓기듯 살아서인지 숨은 늘 가슴께에서 멈췄고, 폐 깊숙이 내려가지 못했다. 깊게 들이마실 여유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걸 포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몸은 앞으로 가고 있는데 마음은 늘 한 박자 늦었다. 나는 깊고 가벼운 숨을 동경했지만 항상 가빴다. 그건 내가 절박하게 살아간다는 신호가 담긴 담긴 또 하나의 습성이었다.
학교로 가는 길은 언제나 마로니에 공원을 지난다. 습관처럼 몸이 기억하는 동선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전에 일정이 있어 평소와 다른 길에서 학교로 향했다. 조금만 서두르면 바로 도착할 수 있는 지름길이 있었지만, 나는 고민하다가 일부러 방향을 틀었다. 굳이, 돌아갔다. 마로니에 공원 쪽으로.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나에게 낭만을 하나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로니에 공원에 들어서자 익숙하고도 낯선 모습이 보였다. 사람들의 발걸음, 벤치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침묵과 더불어, 크리스마스를 맞아 설치되어 있는 큰 트리. 그 사이를 지나며 나는 아주 잠깐 멈춰 섰다. 그리고 그제야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이 아니라, 배까지 내려가는 숨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얕은 숨으로 아슬아슬한 삶을 버텨왔는지, 그때서야 알았다.
낭만은 시간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 대신 속도를 늦춘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불안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여기’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잠깐 확인시켜 준다. 그 확인 하나로 사람은 다시 걸을 수 있다. 나는 다시 깊은 숨을 쉴 수 있다.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학교로 향하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곳을 찬찬히 걸으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여전히 쫓기는 하루였지만, 숨만큼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오늘은 충분했다.
어쩌면 삶은 이런 선택들로 유지되는지도 모른다. 가장 빠른 길 대신, 나를 살리는 길을 택하는 것. 효율 대신 낭만을 하나 챙기는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되는 선택 말이다.
내일도 숨이 얕아질 것이다. 또다시 지름길 앞에서 망설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안다. 돌아가야 할 길이 있다는 걸. 나에게 낭만을 주는 그 길이, 결국 나를 학교로, 삶으로 데려다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