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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 Jul 20. 2021

생산과 배설: 신입의 딜레마

아직 신입이라서 다행이다.

벌써 1년 차가 되었다. 보통 1년 차까지는 신입으로 여겨진다. 더군다나 나는 아직은 후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당당하게 신입이라는 타이틀로 자리하고 있다.


대학생 때는 '학생'이라는 이름이 주는 소속감, 그 안에서 느끼는 안락감에 익숙해져 사회로 나갈 시기를 그렇게 미뤘었다. 입사 후 막 '신입'이 되었을 때는 끊임없는 적응의 굴레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여기저기 부딪히고 배우는 일의 연속에서 '신입'이라는 수식어는 짐덩이처럼 느껴지고 마치 성장을 저해하는 것 같았다. 이젠 기획자로 살게 된 지 1년이 흘렀다. 그리고 난 여전히 신입이며, 그 수식어가 붙는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 : 아 신입이니까 이런 실수는 당연히 이해해주시죠 (X)

아직 쪼렙이니 자만심은 NOPE, 자기개발만이 살길이다 (O)


1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면, 신입은 실수에 대한 관용을 당연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본인의 부족함을 느끼면 그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채우려고 노력해야 하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실수를 너그러이 이해받을 시기도 지금이 유일하지만 그 실수가 반복되면 좋지 않은 결과가 기다린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끝은 타의적 퇴사더라..)


그리고 1년 차가 넘어가는 시점인 요즘, 특히 업무를 할 때 계속 물음표처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이번 주에 기획하고, 발행하고, 운영한 모든 것들은 과연 생산이었을까 배설이었을까.


동생이 열심히 키우고 있는 심즈 아기


정보의 바다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가 생겨난다. 그 거센 물살을 가르며 나의 배는 얼마나 나아갈까. 얼마나 수면 위에 떠있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자신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바다가 넘치도록 일조하는 무의미한 콘텐츠가 아닌 의미 있는 기획을 위해 여전히 트렌드를 찾고 인사이트를 분석하고자 노력했다. 마음속에 늘 '초심자의 행운'은 길지 않고 되뇌며, 그 누구도 어떠한 부담을 준 적은 없지만 스스로 한주를 회고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번 주는 좀 잘한 것 같은데 못해도 90점이지. 과연 이번 주 나의 성과에 60점은 줄 수 있을까? 이처럼 회고에는 뿌듯함과 후회가 공존한다. 그렇기에 모든 것에 있어서 조심스러워지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우울함이 나를 잠식하려는 찰나, 누군가 지나가며 했던 말이 응원이 될 줄 몰랐다.


"00 씨, 아직 신입이잖아요?"


다행이다. 아직 신입이라서. 생산일지 배설일지 고민하는 이상한 딜레마를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 준 말이었다. 모르면 물어볼 수 있고 여전히 배워도 되는 위치이다. 내가 가진 인사이트로 모든 것을 커버하기엔 부족한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더 크게 나아갈 미래와 커리어를 위해 마치 시행착오처럼 견뎌내는 시기임을 인정했다. 본인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 스스로 한계를 만든다고 한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퇴행하는 것만큼 두려운데 전진하지 못하게 울타리를 세우며 고민하고 있었으니.


신입이라는 말을 슬슬 벗어날 때쯤 다시 한번 '신입' 소리를 들은 것이 역설적으로 힘이 되었다. 딜레마는 이제 안녕이길 바라며, 앞으로는 더욱 생산적인 고민들로 채워야겠다. 그리고 언젠간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커다란 파도가 아닐지라도, 똑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잠시 귀 기울이게 하는 물방울을 만드리라는 '아직은' 신입로서의 소박한 다짐을 해본다.


뿡뿡이가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항해사가 될 날을 기다리며. 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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