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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불확실성

몇 년을 해도 처음하는 것처럼 어려워

by 박작가

2022년 작







뭔가를 할 때 ‘이게 맞는 건가?’하고 생각하는 건 나의 오랜 버릇이었고 그건 연애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좋으면 사귀고 싫으면 헤어지면 된다는 간단한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맞는 사람인지, 내 연애의 방식이 진정 ‘옳은’ 것인지를 계속 생각했다.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더 생각나는 것처럼, 이런 생각은 오 년을 넘는 연애를 하고 그 연애가 지속되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고 앞으로도 함께할 거라며 미래를 그리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또 언제 헤어질지 모르는 게 연애다. 우리는 부부처럼 법적으로 연결된 것도 아니고 부모와 자식처럼 혈연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하다못해 사촌이라도 되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우리는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단 몇 번의 우연이 아니었으면 만날 일이 없었을 영원한 남이었다.



몇 개의 ‘만약’을 가져다 붙이면 더 그렇다. 내가 모두가 반대했던 자퇴와 재수를 하지 않았다면 못 만났겠다. 그가 편입 시험에 합격해 다른 학교로 갔다면, 제대 후 바로 복학하지 않았다면 못 만났겠다. 내가 하향지원을 해 일본어문학과를 가지 않았다면 소연이 언니를 못 만났을 테니 동아리에 들어가지 못했을 거고, 그러면 결국 못 만났겠지. 일련의 만약은 운명이 되어 불확실한 우리 사이의 접착제가 되어주었지만 난 운명을 믿는 사람이 아니기에 ‘우리 커플 운명설’은 불안을 더는 데 별로 효과가 없었다.



설사 이게 운명이고 또 내가 운명을 믿는 사람이라고 한 들. 우리가 사귀게 됨으로써 제 몫을 다한 과거의 운명은 미래의 불확실성이 가져다주는 불안과 의심을 잠재워주지 못했다. 더군다나 ‘우리는 운명’이라는 건 사귐으로써 증명되었지만 만약 헤어지면? 그러면 헤어지는 것도 운명이니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운명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행복한 연애를 하고 있다. 서로를 좋아하니 노력하고 있고 또 둥글게나마 미래 계획을 세우며 관계의 긍정적인 신호탄을 마구 쏘아대는 매일을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헤어질 수 있다는 불안을 버리진 못했다. 나는 그를 완전히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은 인생을 함께 살자는 약속인 결혼마저 이혼이라는 끝이 존재하는데 법적인 강제력도, 딱히 이어진 끈도 없는 이 연애는 얼마나 불안하단 말인가. 지금은 너무나도 행복하지만 상대방이나 내가 당장이라도 서로가 질린다며 차단하고 사라지면 우리 사이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되어버리는 그런 얄팍한 관계. 그런 관계가 바로 커플이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커플인 걸.



좋아하는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걸 잃을까 두려워 할 수 있는 거라고. 나 역시 지금 그를 사랑하고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가 언젠가 나를 떠나진 않을까 불안한 거지만, 사실 지금 그가 날 사랑한다는 사실은 불안을 가증시킬 뿐 이를 더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이라는 말도 불확실하다.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지 내일도 내가 살아있을 거라는 게 아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는 지금 사귀고 있지만 내일도 사귀고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한들 마냥 불안에만 벌벌 떨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당장 내일 남이 될 수 있지만, 적어도 지금 확신하기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연애를 둘러싼 내 불안은 계속 갱신된다. 매번 속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사랑이 굳건한지, 우리의 연애가 무사한지 확인하려고 든다. 그 마음이 확신으로 바뀌면 안심할 수 있고, 그 안심은 순간의 불안을 잠재워주며 내일은 오늘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게 해준다. 그래놓고 내일이 되면 또 불안해져서 확인하고, 안심하고, 그러다가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역시. 매순간 확인이 필요하다는 건 연애가 불확실하다는 뜻일 거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믿지 못하고 확신한다고 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한다. 굳건하다 말하면서도 굳건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게 내 마음이든, 그의 마음이든, 우리의 관계든. 그런 불안 속에서 지금 나는 사랑을 한다. 그리고 불안이 대부분이고 사랑이 조금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이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나는 그 의지만큼은 백 퍼센트 신뢰한다. 그게 어쩌면 이 불안한 연애를 유지하게 해주는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사준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사랑이 담겨 있다고 믿고, 그가 예매해 준 영화 티켓 한 장에도 사랑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원하다면 얼마든지 반복해서 주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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