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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환경운동가

하지만 우리 모두 그렇게 해야만 해.

by 박작가

2021년 작







내 남자친구는 패션 환경운동가다. 그는 환경을 생각하겠다며 샴푸 비누와 비누망을 샀지만 한 달이 지나 다시 구매할 때가 돌아오자 7,000원 짜리 비누는 너무 비싸다며 11,430원에 파는 4L 용량 샴푸를 샀다. 그러더니 두 달 후 다시 환경을 보호해야한다며 1,000원 칫솔을 뒤로 한 채 친환경 제품 쇼핑몰에 있는 2,800원 짜리 대나무 칫솔을 찾아봤다. 그러고는 10개에 오천원 정도 하는 다이소 칫솔을 구매했지만.



스위치처럼 켜졌다 꺼지는 그의 환경 사랑 시작은 몇 년 전, 한 다큐멘터리를 봤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씨스파라시>를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그는 지구를 위해 채식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나와 함께. 충동적인 결심이었지만 우리는 꽤 열심히 했다. 마트를 가면 채식 라면을 골랐고 밥 반찬으로 채식 만두를 샀다. 이왕 먹는 걸 신경쓰는 김에 다이어트를 하자며 운동도 꾸준히 했다. 고기 없는 삶은 한 달 가량 순조롭게 흘러갔고 우리는 지구를 지킨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서로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하지만 그것도 한 순간이었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갔다. 채식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고, 우리에겐 충분한 에너지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하며 채식은 흐지부지 되었고 환경에 대한 열망은 옅어졌다.

하지만 스위치라고 하지 않았던가. 환경 사랑 스위치는 머지 않아 다시 켜졌다. 그가 미생물 음식물 처리기를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한 것이다. 절약도 절약이지만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다는 걸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그는 그대로 다이소에 가서 밀폐용기와 배양토를 구매하더니 상자에 이리 저리 채워 넣고 섞고는 뚝딱 만들었다. 그러곤 하루에 두 번씩 흙을 섞으면서 며칠 전에 넣은 사과가 얼마나 작아졌는지, 식빵은 어떻게 사라졌는지 자랑했다. 마치 본인이 미생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로부터 얼마 후 그는 식물에도 관심이 생겼다며 우후죽순 반려식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지난 6년동안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어쩌구 저쩌구에 도움이 되니 좋다던가. 기억은 안 난다. 나름 종류도 겹치지 않게 모으더니 분갈이도 하고 물도 주며 잘 키우려고 노력했는데, 그는 그 과정에서 물통, 분무기, 전등을 샀다. 물론 전등 전구도. 필요한 물건이 집 인테리어와도 잘 어울려야하고 또 예뻐야 한다며 ‘오늘의 집’을 뒤져보던 모습이 선하다. 식물을 키우는 건 좋지만 그걸 위해서 물건이 늘어나는 건 괜찮은 걸까? ‘분갈이’는 말은 짧지만 준비는 길다. 새로운 화분, 삽, 흙과 여러 종류의 돌이 필요하거든. 의문이 혀에 간당간당 매달리긴 했지만 소비하는 그가 너무 행복해보여 삼켰다. 아, 그러고보니 상당수의 식물은 인터넷으로 구매했다. 택배를 배달하는데 탄소가 얼마나 나오더라?



패션에서는 환경운동을 하는 게 신기하다. 말로는 늘 옷을 사야 한다고 하지만 단벌신사 마냥 몇 안되는 옷을 돌려 입으니까. 22년 겨울, 그는 내내 옷을 사야 한다고 말하고는 한 벌도 안 샀다. 곧 다시 겨울이 돌아오는데 본인은 땀을 잘 안 흘린다며 이번에도 안 살 것 같다. 뭐, 그러기 몇 달 전에 멀쩡한 애플워치 스트랩을 이유없이 새로 샀던데.



사실 생각하면 지구에 사는 모두가 패션 환경운동가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진짜 환경운동가’하면 떠오르는 사람들도 알고 있는 이론이나 지식을 그대로 활용하진 못할 거다.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환경 포럼에 자동차랑 비행기를 타고 가서는, 에어컨이 켜진 시원한 방에서 긴팔 정장을 입은 채 지금 지구가 끓고 있다고 말하겠지. 우리도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면서도 대중교통 대신 자동차를 타고, 자연을 지킨다는 에코백을 다른 디자인으로 네 개씩 사고, 그러면서 입술은 한 개지만 립스틱은 수 없이 많이 구매하잖아. 취향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니까, 그리고 너무 갖고 싶으니까.



평범한 면티 한 벌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실이나 천 색이 같아야 하는 건 모두 동의할텐데, 왜 지구를 위한 노력의 여부는 인식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며 존중해주는걸까? 처한 상황이 다 다르다는 건 알지만 우리가 지금 그렇게 부르짖는 가치를 지키려다 지구를 망가트릴 수는 없는 거다. 그 가치는 우리를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지만 지구가 있어야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니까. 난 개개인이 ‘할 수 있을 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주관적이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듣기 좋은 말로는 끓는 지구를 미지근하게 만들 수 없을 거다.



어렵다. 사람은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는데, 사람이 즐기며 내뱉는 모든 웃음에 탄소가 섞여 있다는 게. 그 탄소가 지구를 망하게 할 것이며 결국 누구도 즐기지 못하는 세계를 만들고 말거라는 게. 국가의 존폐를 걱정하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하는데 정작 그 아이 하나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뿜으며 지구를 다치게 하는지, 자영업자 망하고 나라 경제 망한다며 소비를 하라고 하는데 그 소비는 또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낳는지, 진정으로 생각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제는 글로멀 ‘워밍’이 아닌 글로벌 ‘보일링’ 시대라고 한다. 지구는 따뜻해지고 있는 게 아니라 펄펄 끓으면서 빠르게 그 온도를 높여가고 있다고. 그리고 전문가들은 이정도 수준에 와서는 개인의 노력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각 가구가 분리수거를 잘 할 수 있도록 벌금을 높여 부과하는 것보단 현대가 아파트 단지를 세울 때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고 또 건물에 통 유리창을 달지 못하도록 강하게 제제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말이다.



ㅡ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에 사는 사람은 모두 패션 환경운동가가 되어야 한다. 윤호처럼. 우리는 여전히 지하철 보다는 자동차를 타고, 취향이 바뀌었다며 멀쩡한 셔츠를 버리고, 신상이 나왔다고 호기심에 물건을 사서 쓸 거다. 하지만 지구가 끓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환경을 위해 개개인의 노력과 관심도 필요하다는 걸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래서 고기를 일주일에 세 번쯤 덜 먹고 분해가 잘 된다는 수세미를 삶아서 설거지하는데 사용한다면. 어디에서 환경 보호 관련 전시나 행사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떡볶이 페스티벌 보다 그곳을 방문하기를 선택한다면. 그러면 언젠가 내가 눈을 감는 날 ‘맥에서 새로 나온 립스틱 3447개를 다 써봤다’, ‘좋아하는 연예인 콘서트를 보려고 유럽에 일곱 번을 가봤다’는 것 보다는 ‘내가 에코백 하나 사서 칠 년쯤 썼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질 날이 올 거다. 내가 인식하고 있든 인식하지 못하든, 관심이 있든 없든, 지구는 계속 나빠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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