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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따가 Apr 01. 2020

오늘은 치킨 말고 집밥을 해 드시죠

유튜브 '윤이버셜'의 맛

어제는 '후라이드 참 잘하는 집'에서 양념 치킨을 시켜먹었다. 기름진 배달 음식은 고된 하루를 잘 이겨낸 나에게 주는 상이다. 사극에 나오는 장군들이 가끔 병사들에게 내리는 술과 고기가 나에겐 바로 치킨과 콜라인 것이다. 치킨을 뜯으며 유튜브를 보고 있노라면 그날 하루는 다 지나갔다고 봐도 좋다. 이미 치킨과 콜라에 녹아내린 몸으로 다른 생산적이고 보람찬 일은 할 수 없지 않은가! 늘어가는 몸무게와 늘어나는 뱃살 늘어진 내 마음은 더 이상 쾌락에 저항할 수 없다. 


재택근무를 시작하고부터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그날의 과제였다. 주말이 아니면 대부분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해왔기에 집에서 하루 2끼는 부담스러웠다. 처음에는 주로 치킨, 돈가스와 같은 튀긴 음식을 에어프라이어로 데워먹었다. 에어프라이어는 훌륭했고, 튀긴 음식은 맛있을 수밖에 없으니 행복했지만, 나의 위는 나약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느끼하지 않은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어 졌다. 그래서 주문한 닭가슴살, 양배추, 양상추, 드레싱에 올리브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샐러드가 이렇게나 귀찮은 먹을거리였다니 야채를 씻고, 물기 빼고, 닭가슴살 데우기를 반복하기 일주일. 겨우 풀떼기나 먹자고 이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먹고 싶은 것을 편하게 먹자. 건강 따위.


냉장고에 콜라를 한 박스 사두면 든든하다.



제주도와 인간과 고양이 다섯 마리 


최근  '윤이버셜'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즐겨본다. '윤이'라는 제주도에 사는 인간 한 명과 고양이 다섯 마리의 영상을 업로드하는 곳이다. 보통 일상을 10분 정도로 편집해 올리는데 훌륭한 편집과 연출, 효과음과 영상미는 제쳐두더라도 구성이 좀 특이하다. 아름다운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일과가 짧게 요약되는데 보통 여기까지가 영상의 반 정도다. 중반부부터는 주로 고양이들을 관찰하는데, 윤이의 시선으로 보는 다섯 마리 고양이의 모습은 한 편의 애니메이션 같다. 


그리곤 뜬금없이 시작되는 요리. 전문가의 요리는 아니지만 익숙한 솜씨로 만들어내는 멍게 덮밥, 꽃게탕, 바지락 수제비, 주꾸미 볶음은 참으로 맛있어 보인다. 잘하는 요리나 맛있는 레시피보다는 음식을 하는 모습이 진지하면서도 경쾌해 보이는 것이 핵심이다. 신선한 식재료들을 먹기 좋게 자르고 섞고 익히는 과정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모니터를 통해 느껴지는 그 음식들의 맛은 편안하고 안전하다. 윤이버셜의 맛이다.


윤이버셜 유튜브, 곧  대스타가 될 것이다



나도 오늘은 집에서 밥을 해 먹을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두부를 넣은 된장찌개를 할 것이다. 된장찌개는 쉽다. 적당한 재료를 먹기 좋게 잘라 된장을 푼 물에 익히면 된장찌개가 된다. 먼저 멸치를 쌀뜨물에 끓인다. 쌀뜨물이 없다면 맹물도 좋지만 난 쌀밥을 먹을 것 이기에 쌀뜨물로 한다. 백종원 아저씨가 이렇게 만들라고 했다. 그리고 각종 야채들을 준비한다. 난 양파가 없지만 괜찮다. 된장만 넣으면 된장찌개인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다. 된장을 물에 풀고 준비한 재료들을 하나씩 넣는다. 마늘과 고추는 잊지 않도록 한다. 빠지면 허전하다. 그리고 내 입맛대로 간 보며 만들면. 완성! 


나도 된장찌개를 끓일 줄 안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된장찌개를 입에 넣으면 남은 하루를 잘 살아갈 용기가 생긴다. 입에는 녹아들지만, 쾌락에 찌들게 되는 치킨과는 다르다. 갓 지은 쌀밥과 부드럽게 씹히는 애호박이 짭짤한 된장 국물과 함께 몸속에 들어가면 왠지 모르게 힘이 난다. 역시 난 한국 사람인가, 아니면 정말로 아저씨가 되어가는 것인가!? 재택 기간 동안 먹었던 식사 중 가장 만족스럽다. 효율과 편리함만 생각하던 습관이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만든 것 같다. 식사는 해결해내는 것이 아니다(윤이버셜의 교훈이라 하겠다). 매번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시간을 내서 밥을 짓자. 직접 끓인 된장찌개에는 단단한 맛이 있다. 내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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