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을 멈출 수가 없다. 처음에는 댓글이 재밌어서 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습관적으로 '깡'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저 무대를 위해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텐데, 그렇게나 못난 점을 찾아내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것은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들 즈음. '놀면뭐하니'에 비 본인이 등판해서 1일 3깡. 1일 7깡을 권한다. 이제 마음 놓고 깡을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왜 깡에 끌리는 걸까. 단지 웃기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깡을 보고 있으면 오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노래에 담긴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동안 사랑받던 비의 모습으로 꽉꽉 채워져 있으면서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도들도 꾹꾹 눌러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깡'이 이렇게 되어버린 이유는 노래 하나에 너무 많은 것들을 미어터지도록 채워 넣은 것에 있지 않을까?
형 왜 아직도 이러고 있어
'깡'은 촌스럽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비가 데뷔 때부터 해오던 것들. 우리가 사랑했던 그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사랑받던 그의 매력을 돌아보자.
꾸러기 표정과 입술 깨물기
꾸러기 표정과 입술 깨물기는 비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데뷔 시절부터 짓던 저 표정에 얼마나 많은 여성팬들이 소리를 질렀을까. 비의 무대인생 동안 함께한 저 표정을 비는 결코 포기할 수 없었을 거다.
방탄 갑옷은 '널 붙잡을 노래'에서 입던 무대 복장의 컨셉을 가져왔다. 이 복장은 '드래곤볼Z'에 등장하는 베지터의 전투복과 흡사한데, 반짝이는 물고기 비늘을 붙여 화려한 모습을 하고 있다. 깡에서는 물고기 비늘은 빼고 좀 더 얌전하게 바꾸었지만 전투복 컨셉은 유지하고 있다. 반짝이 큐빅이 박힌 모자는 'RAIN' 글씨가 큼지막하게 박힌 모자로 바뀌었는데 'RAIN' 글씨에 대해서는 아래쪽에서 따로 살펴보겠다.
'RAIN' 글씨 박힌 모자는 RAIN'은 비의 영어 이름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히트곡의 제목인 RAINISIM의 영향일 거다. 6집의 제목이 RAIN EFFECT인 것을 보면 월드스타인만큼 자신의 RAIN이라는 영어 이름에 애착이 대단한 것 같다. 아재 개그를 선보이며 무리하게 '나, 비 효과'를 가사에 넣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외에도 노래의 면면을 살펴보면 비가 그동안 보여줬던 모든 매력을 전부 이 한 곡에 녹여내고 싶었다는 생각이 든다. 깡은 기본적으로 퍼포먼스를 강조한 곡이지만, 비의 노래 중에 감성적인 발라드도 빼놓을 수 없었기에 그의 감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발라드 한 소절은 들어가야 했을 거다. 갑자기 화려한 조명이 감미롭게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되는 건. '깡'에 티셔츠 찢기가 없다는 점인데 10년 전 인터뷰에 마흔이 되면 다시 옷을 벗겠다고 한 일이 있어 걱정이 된다. (비, "옷 벗는 거? 20대까지만..마흔에 다시 벗겠다" - 아시아경제)
형 왜 이렇게 된 거야
'깡'이 단순히 그동안 사랑받았던 비의 모습을 한 데 뭉쳐놓은 거라면 그래도 지금처럼 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거다. '깡'이 놀림받는 것들 중 '원 픽'은 아마도 기괴한 안무일 거라고 생각한다. '강아지 척추 다친 춤' , '꼬만춤' 등 많은 기괴한 춤들이 있지만 나의 원픽은 '팔척귀신 춤'이다. 얼굴에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추는 팔척귀신 엔딩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비는 15년간 해오던 것을 한 곡에 모아 넣고도. EDM과 힙합 소스, 크럼핑 등 새로운 것들을 '깡'에 쏟아 부았다. 나는 지금의 '깡' 만든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이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비는 왜 이렇게 무리한 시도를 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박진영의 인터뷰에서 추측해볼 수 있었다. 박진영은 2017년 비 컴백 스페셜 인터뷰에서 처음 비를 뽑았던 이유를 눈빛 때문이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진영 인터뷰 보러 가기
자존심은 굉장히 강한데. 세상일은 잘 안 풀리고 자기를 잘 몰라주니까 반감과 그 시니컬해진 느낌과 하지만 절대로 또 자기 자존심은 포기할 수 없고. 아주 복합적인 눈빛이었어요. 굉장히 신기했어요. 그런 눈빛은 처음 본 것 같아요.
2014년 1월에 발매된 비의 정규 6집은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타이틀 곡이었던 LA Song 은 인지도가 있기는 했으나 가사가 이상하다는 반응과, 태진아 선생님이 피처링한 줄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예전의 인기를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결과였을 거다. 그래서 3년이나 지난 2017년. 싱글 앨범을 준비할 때 그만큼 칼을 갈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지 않았을까. 자신을 잊어가는 팬들과 비웃고 놀리기나 하는 대중들. 데뷔할 때의 그 눈빛으로 다시 한번 가수 '비'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노래만큼 사람을 그 노래를 듣던 시절로 데려가는 것도 없다. 나도 비의 노래를 좋아했고 '안녕이란 말 대신'은 학창 시절 내내 mp3 플레이리스트에 있었다. 비의 전성기가 그대로 녹아 있는 '깡'을 보고 있자면. 그때의 내 감성과 느낌도 그대로 살아나는 것 같다. 마치 싸이월드 흑역사를 보듯. 애정과 추억과 부끄러움이 담긴 오묘한 감정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깡'을 찾아본다.
비는 '놀면뭐하니'에 출연해 '깡' 놀리는 댓글을 오히려 즐기고 있다고 했다. 무관심보다는 놀리더라도 좋으니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기를 원했던 걸까. 사태가 이렇게 된 이상 비의 행보가 '깡'에서 멈출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대중들이 다시 자신을 잊는다고 느끼면 또 한 번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든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1일 3 깡을 하자. 더 큰 일 치르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