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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 14. 2020

하와이 그리움 병

위로가 필요한 순간 가장 생각나는 곳

나는 하와이를 사랑한다.


하와이를 방문하기 전, 내게 하와이라는 곳은 그저 신혼여행지였다. 도시 여행을 좋아하던 나에게 하와이는 그다지 매력적인 장소가 아닌 것 같았다. 그게 바로 내 20대 여행의 한계였다.


30대가 되고 온 세상의 먼지를 다 뒤집어쓴 것만 같은 허탈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쯤, '휴양을 하고 싶다 + 직항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조건에 맞춰 여름휴가 기간 첫 번째 하와이행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이후, 매 년 여름휴가 장소는 하와이, 내가 사랑하는 하와이였다.



#하와이의 바다는 눈이 부시다.

비행기에서 한 숨도 자지 못해 초췌해진 얼굴로 마주한 하와이는 천국 같았다. 사람이 죽고 나서 가는 곳이 천국이라면 이런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랗다 못해 파란 보석을 길게 펼쳐 놓은 것만 같던 바다가 사방에 있었다. 친절하게도 하와이의 바다 색깔은 매우 맑았고, 깊이는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수영복이 없어도 잠시 차에서 내려 손 끝과 발 끝으로 바다를 느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는 유명한 해변가를 가야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모든 해변가의 바다가 모두 아름답고 청명했다. 그런 바다와 맞닿아 있는 하늘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내가 하와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다.

Hanaumabay, Oahu, Hawaii


#하와이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즐거웠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느라 바빴고, 그럴싸한 수영복을 입고 나타난 연인들은 모래 위에 대충 내려놓은 듯한 스트라이프 비치타월 위에 누워 오후의 강렬한 태양을 마주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오다 오롯이 그들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여행길에 오른 듯한 노부부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바닷물에 서서히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슴까지 물이 차오르는 곳에 다다르자 노부부는 한참을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또 서로를 바라봤다. 한 없이 평화로운 광경의 연속이었다. 그 사람들 속에 있는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 웃고 있었다. 미간에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세로줄이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Waikiki Beach, Oahu, Hawaii


#하와이의 노을은 눈물 난다.

참으로 힘든 시기가 많았다. 일도 힘들었고 사람도 힘들었고 내가 처한 상황도 힘들었다. 위로가 필요했다. 물론 내 옆의 그가 참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또 다른 종류의 위로가 필요했다.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도 있었고 어느새 짐이 많아져버린 어른이 되어버린 듯 느껴져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날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날들의 중간에 하와이에 있었고, 저녁노을을 바라봤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강렬한 노을의 임팩트가 있다. 주변의 소음도 사라지고, 내 옆에 누가 있는지도 잘 느껴지지가 않았다. 잠시 이 곳이 어디인지도 잊게 되는 어느 한순간, 노을이 가장 강렬하게 그 존재를 드러낸 시간이었다. 나는 파도소리와 강렬한 노을을 따라 내 감정을 하나씩 끄집어냈다. 거친 감정을 가장 먼저 꺼내 흘려보냈고, 그간 조금씩 나를 짓눌렀던 부담감과 어리석음을 꺼내 노을 그 주변 어디론가에 펼쳐냈다. 그렇게 내 마음의 짐을 하나둘씩 꺼내 놓으면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든다. '아! 여기 하와이구나!' 그리고 눈에서 눈물이 살짝 떨어진다. 그렇게 완벽한 위로를 받는 순간이 온다.

Kaanapali Beach, Maui, Hawaii


#하와이의 ALOHA는 삶의 방식이 되기도 한다.

하와이의 인사말은 ALOHA. 워딩이 예뻐 좋아하는 말인데 그 뜻은 더 아름답다. 함께 나눈다는 뜻의 'ALO', 생명의 숨결을 뜻하는 'HA'가 모여 'ALOHA'가 되었다. '서로의 존재와 숨결을 함께 나눈다' 그것이 곧 인사이고 삶의 방식인 하와이. 바다와 노을에게서 위로를 받았다면, 그 이후에는 'ALOHA'의 방식으로 나와 내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어른으로 사는 방법 중 하나가 될 것도 같았다.

Kaanapali Beach, Maui, Hawaii



나는 하와이를 배경으로 촬영한 조지 클루니 주연의 영화 '디센던트' OST만 들으면 그렇게 하와이가 떠올라 그때의 그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이 공존하는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내일이라도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1월 초 미리 비행기와 호텔 예약을 하려다 귀찮다며 미뤄둔 게 (안타깝게도) 다행인 순간이었다. 온 세계에 퍼진 전염병의 여파로 올해는 하와이를 아마도 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나는 '하와이 그리움병'이 걸렸다. 마치 하와이에서 몇 년은 거주하다 온 사람이 느낄만한 향수병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일 년에 한 번씩 찾아갔던 여행지이기 때문에 더 그립고 더 갈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생각의 정리가 잘 되지 않고, 이정표가 없는 내 삶의 방향을 잡는 게 어렵다. 이럴 때 하와이에게서 받는 위로는 꽤 큰 힘이 되고 그 여운이 오래도록 남을 텐데,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강렬한 서운함과 그리움을 함께 느끼는 중이다. 나는 여행 당시 남겨놓은 사진과 영상, 파도 소리를 핸드폰에서 고이 꺼냈다. 이걸 보다 보니 나는 내가 하와이를 사랑해 마지않는 이유를 눈이 부신 바다, 즐거운 사람들, 눈물 나는 노을과 ALOHA 말고도 쉴 새 없이 꺼내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이토록 사랑하던 장소가 있었던가. 올해는 아니겠지만 언젠가 곧 가게 될 사랑하는 장소, '하와이'라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축복받은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어서 그 날이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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