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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 22. 2020

그깟 공놀이에 일희일비하는 이유

너와 나, 인생의 축소판을 앞에 두고

나는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특별한 일이 없으면 TV를 켜고 주로 야구를 본다.


야구 세계에 입문하지 않은 주변 동료들은 "나도 야잘알이 되고 싶어", "야구장도 즐기고 싶고 좋아하는 선수도 생기면 좋겠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야구 세계에 입문하게 되는 순간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한 짐 더 싣고 다녀야 한다는 점이다. 그 스트레스는 주로 응원팀의 패배와 직결되곤 한다.


오늘의 내 상황만 봐도 그렇다.


"아 짜증 나! 왜 저러는 건데?"

야구를 한참 보다가 응원팀의 역전패가 확실해지자 곧장 나온 반응이었다. 이런 게 바로 야구를 접하지 않은 사람은 받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의 한 종류다. 혼자 거실에서 온갖 짜증을 내다가 얼마 후 야구 커뮤니티에 들어가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고 공감하는 형태로 스트레스를 중화시켰다.


오늘, 나의 응원팀은 어찌어찌 점수를 내고 상대팀에 2점을 앞선 상태로 9회를 맞이했다. 하지만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던 상대팀은 마지막 공격 기회에서 무차별 폭격 같은 타격쇼를 뽐내며 무려 9점을 가져갔다. 그 9점을 가져가는 동안 나는 실점 위기의 긴장감에서 불안을 넘어, 급기야 극대노의 상태에 도달하는 거다.


내가 이렇게 야구 경기 결과에 흥분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늘 묻는다.

"왜 야구 한 경기에 그렇게 일희일비하는 거야?"

그럼 난 고민도 하지 않고 얘기한다.

"원래 다 그런 거야"


저렇게 대충 대답해놓고 나니, 정말 내가 왜 이렇게 공놀이 한 경기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이유가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나는 야구를 보게 된 건 2007년이었지만, 말 그대로 '매일매일' 챙겨보기 시작한 건 2011년부터였다. 그때 나는 정말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고통을 한꺼번에 마주한 사람인 것처럼 지내는 게 일상이었다. 회사에서의 자존감은 끝없이 하락했고, 당시 남자 친구와는 지저분하게 헤어졌다. 가까웠던 친구 한 무리와는 서운한 일을 겪어 거리를 두게 됐다. 그때 나는 야구에 푹 빠졌다. 매우 진지하게. (이전의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야구를 볼 때만큼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경기 시간은 2시간을 훌쩍 넘기는 게 기본이었고, 그게 나에겐 가장 큰 매력이었다. 나는 '절대로' 야구 외에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1년은 내게도 암흑기였지만, 사실 내 응원팀에게도 암흑기였다. (팀 안에서의 여러 이슈가 생겨 성적이 추락했던 해다.) 좋지 않은 사건이 터지고, 감독이 교체되는 등 참 어수선했다. 그럼에도 나는 평일에 야구장을 가거나 집에서 혼밥과 함께 매일 야구를 시청했다. 그러고 보면, 그때 내가 가졌던 감정은 참으로 오묘했다. 내 상황이 힘들어 야구를 보았는데 경기를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서도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그들도 무언가 힘들어 보였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도 응원팀만은 절대 무너지지 않았으면 싶어 혼자라도 야구장을 더 자주 갔다. 그리고 그 해, 나의 응원팀은 5할이 채 되지 않는 승률을 기록하며 정규리그를 마쳤다. (가을야구도 당연히 못 갔다.)


그때쯤, 문득 나는 이 응원팀이 친구 같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나의 어려움을 위로하고자 했는데, 또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보고 무언가 울컥했던 것이 분명 있었다. 내가 그깟 공놀이에 일희일비하게 된 이유의 시작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 응원팀의 경기에서는 꽤 타이트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가 9회 상대팀에게서 무자비한 홈런과 안타를 그야말로 두드려 맞았다. 마운드에서 무너지는 응원팀 투수들을 보니 그때부터 화가 난 것 같다. '내 친구가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와 비슷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오늘 꼭 이겨야겠다고 온 몸을 날려 수비했던 선수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햄스트링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선발로 나와 힘들어하던 선수의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라이트와 헤비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일개 야구팬이지만, 동시에 친구라고 느끼고 지낸 시간이 어느새 10년째다.


야구 캐스터 혹은 해설자들이 종종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과 같다고도 얘길 한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누구나 인생에서 지고 싶지 않고, 흔들리고 싶지 않고, 무너지고 싶지 않지 않은가. 한 발이라도 더 뛰어서 나를 증명할 수 있다면 열심히 달려서 어느 한순간만큼은 내가 이기는 시점에 도달하고 싶지 않은가. 그 축소판의 인생을 충분히 공감하고 존중하기에 나는 라이트와 헤비 사이 어딘가의 야구팬이 되어 단단히 곁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졌으니 내일은 이기겠지? 이런 생각은 금물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모르는 거다. 그래서 일희일비하다가 결국은 또 내일 아침부터 친구 같은 그 팀을 응원하고 있을 거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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