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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 16. 2020

곰과 여우의 탕비실 토크

직장 생활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어딜 가든 항상 여우와 곰이 있다. 학교, 회사, 하물며 집에서도 곰과 여우가 공존하는 사례는 많다. 나는 대체로 곰과에 속한다. 아래 이야기는 철저히 곰의 입장에서 전하는 얘기로, 여우가 듣게 되면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일만한 것들이 있을 수 있다.




사무실에서 한참 일을 하다가 탕비실에 가면 같이 일하는 동료들 일부가 모여 들릴 듯 말 듯 얘기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나는 회사 동료들 중에서도 화려하게 꾸민 옷과 뾰족한 구두로 온 몸을 지탱하고 있던 여자 동료들과 한 때 꽤 가까웠다. 그녀들은 정수기 앞에서 나를 만나면 너무나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는 듯이 반가워하며 진행 중이던 속닥속닥 탕비실 토크에 나를 초대했다.


"A에 대해 얘기하는 중이었어요. 이 사람 정말 이상하지 않아요?"


나는 상사(=조직장)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과는 제법 대화를 잘 나누는 편이었다. 어찌 되었건 조직 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는 윗사람과의 관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한 정도를 떠나서, 상사에 대한 어려움이나 고민을 털어놓는 동료, 후배들에게는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리액션했고 의견에 동조할 때도 많았다. 그렇게 해야만 그들의 어려움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이해하면서 위로해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사가 아닌 다른 동료에 대한 뒷담화를 할 때에는 동조하기 쉽지만은 않았던 적이 대부분이다.


물론 나는 선비가 아니다. 나도 일하다 보면 협조적이지 않은 조직 때문에 화가 나기도 했고, 제 때 일처리를 해주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들을 보면서 속이 터졌다. 하지만 당시 가까웠던 동료들은 상대방의 미숙함이나 무책임한 일처리에 대한 것보다는, 본인과 케미가 잘 맞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불평을 쏟아낸 적이 대부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뒷담화에는 종종 본인의 업무 실수를 덮어두기 위해 상대방의 실수를 더 크게 부각하는 의도가 담겨있던 적이 많았다. 솔직히 그게 참 싫었다. 예쁘게 차려입고 배시시 웃으면서 "나는 옳았는데 상대방은 틀렸어"로 시작하는 얘기들은 꽤나 흡입력 있게 전달되어서 더욱 불편했다. 누구나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 상상되었다. 에피소드를 한참 들려주던 동료는 다른 리스너들에게 공감의 피드백을 바라고 있었고, 그녀의 기대만큼 탕비실 멤버들은 그녀를 감싸주고 A를 바보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 얘기들은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쳤고,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럽게 A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들이 회사 안에 떠돌았다.


이런 대화가 이어질 때 내 반응은 보통 "저랑 일할 땐 그렇지 않았는데 이상하네요" 정도였다. 원하는 리액션을 보여주지 않은 내가 그녀는 얄미웠을 거다. 그래서인지 어느 날부턴가 탕비실에서 그 멤버들을 마주치면 서로 가볍게 인사를 했고 그녀들은 토크를 잠시 멈춘 채 내가 자리를 뜰 때까지 기다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탕비실 토크 멤버에서 제외된 거다. (생각해보니 그 토크에 나를 끼워달라고 한 적도 없었지만 말이다.) '편 나누기'를 좋아했던 그녀들의 편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온 게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당시 탕비실 토크 멤버들은 하나같이 여우였다. 회사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들과는 대단히 잘 어울렸고, (개인의 업무 능력이나 태도와 상관없이)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면 앞서 말했던 '나의 실수를 덮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 혹은 '상대적으로 내가 그 프로젝트에서 조금 더 돋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곤 했다. 여우들에게 야근은 그녀들의 업무량에 대해 눈으로 보여주기 위한 계산된 시간이었고(그녀들은 일부러 야근을 한다고 내게 고백하기도 했었다), 경조사 참석은 진심보다는 회사 윗분들을 만나 본인들의 휴머니즘이 어느 정도 인지를 보여주려는 스케줄이었다.


조직장들이 아무도 없던 날 야근하는 나를 보며, 그리고 승진을 앞둔 시점 팀장과 식사 자리도 마련하지 않고 특별히 어필하지 않던 나를 보며 그녀들은 참으로 답답해했었다. 승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인정하겠는데 나는 애초에 미련한 곰이기도 하고 그녀들만큼 욕심 혹은 열정이 충분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조언인지 오지랖인지 모르겠는 얘기들이 쏟아져 나오자 나는, "나 승진 못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라고 대답하고 그녀들과의 관계에서 조금씩 선을 그었다.


이후 나는 그녀들과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졌다. 대신 점심 식사, 오후 티타임 멤버는 이전보다 더 다양해졌다. 회사 안에는 정치질 하고 줄 잘 서고 싶은 사람들뿐이라고 매우 자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내 선입견도 조금씩 사라졌다. 더 발전적인 일을 하고 싶어 고민하는 사람들과의 대화, 회사 밖에서 나만의 사업을 하고 싶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는 사람의 에피소드, 그리고 조금 더 효율적인 업무 스킬을 알려주려는 선배의 오지랖. 이 모든 것들은 꽤 재미있었다. 곰과 여우의 밀당이 필요 없는 시간이 찾아온 거다.


사실 의미 없는 뒷담화를 하다 보면 그 이후 이어지는 정신적인 공허함이 있다. 이런 얘기들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차라리 출근길 유튜브에서 봤던 대환장파티 웃긴 영상을 공유하며 깔깔거리는 게 나한테 훨씬 큰 도움이었겠다는 생각과 함께 오는 조금 우울한 종류의 공허함이다.


여우들과 함께 하는 탕비실 토크는 지금 생각해도 꽤 복잡한 수싸움이다. 그래도 여전히 여우들은 그녀들만의 프라이드와 높은 굽 구두를 장착한 채로 사무실을 누비고 있고, 나는 사무실 한편에서 운동화 하나만으로 조용히 내 자리를 사수하려 한다.


+ 그래도 여우들의 그러한 노력 또한, 사회생활의 일부임을 나는 충분히 공감하며 인정하고 있다. 어쩌면 여우스럽지 못한 내가 가진 약점이 싫어 그녀들을 '여우'라 칭하고 나를 '곰'이라 부르면서 자학과 동시에 내 능력치의 한계를 합리화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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