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겪으며 나는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성장을 하고 있다. 긍정적인 방향의 성장이었으면 좋겠는데 아직 내 성장의 방향은 잘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조용하고 다수의 의견을 따라가며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목표였던 나는 아마도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조금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되었고 예전보단 차가워졌고 맺고 끊음이 분명해졌다. 조금 더 나를 방어적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만 같아 늘 긴장하며 지냈던 때도 있었다.
이런 삶이 익숙해져 있던 나는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잠시 숨 고르기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최대한 아무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고, 경기력이 형편없어진 평소 응원하던 야구팀의 경기도 (한동안 띄엄띄엄 보다가) 다시 풀타임을 꽉 채워 시청했다. 잠이 잘 오지 않아 모두 잠든 새벽 시간 영국 프리미어리그도 챙겨보고, 아침잠 많던 나 답지 않게 류현진, 김광현 같은 한국 메이저리거의 경기도 제시간에 맞춰 챙겨봤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요즘 일교차가 심한데 감기 조심하렴. 그리고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엄마가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어"
평소 말 수가 없는 나는 엄마와도 주로 전화가 아닌 문자로 연락을 이어오고 있었다. 엄마의 문자는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얘기 혹은 평소 복용하던 약 잘 챙겨 먹으라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일상 이야기들로 채워졌던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 와중에 받은 갑작스러운 문자. 처음엔 꽤 당혹스러웠다. 아마도 나는 지금의 힘든 상황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뭔가 들킨 것 같은 찜찜한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당혹스러움도 잠시. 엄마 얼굴을 떠올리자 잘 유지해오는 것 같던 마인드 컨트롤이 영 제대로 되질 않았다. 그간 잘 쌓아둔 차가운 감정이 한 번에 녹아내리는 느낌과도 같았다.
"응,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할게! 엄마도 감기 조심해!"
짧고 감정 없는 듯한 나의 답장은 아무리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솔직한 내 이야기를 아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엄마의 버팀목이 되어줘야 할 것 같은 시기인데 그렇게 믿음직스럽지도 못한 데다, 말뿐이라도 좀 더 사근사근하게 할 만하건만 끝내 나는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덧붙일 말들은 접어 두었다. 둘째 딸이자 막내딸은 주로 애교도 많고 장난도 많이 치고 엄마와 친할 것 같다는 편견이 있어 내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자책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이번이 오랜만에 딱 그 타이밍이기도 했다.
여전히 나는 엄마가 왜 갑자기 그런 문자를 보냈을지 짐작도 못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딱딱하게 문자를 보내도, 내가 아무리 짧고 의미 없는 전화 통화를 해도 나의 '엄마'이기 때문에 내 목소리의 떨림을 캐치했던 것인지 혹은 '엄마의 직감'이라는 것으로 보낸 것인지, 무지하고 무뚝뚝한 둘째 딸은 전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문자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동안 차갑게 세워둔 내 방어벽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방어적으로 대응하고 차가운 마음을 유지하며 살았는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혼자서 많은 것들을 감당하려고 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엄마는 얼마 후 내게 "쑥떡 보내주면 먹을래?"라고 문자를 보냈다. 쑥떡이라고 해서 나는 백설기처럼 생긴 떡에 쑥이 들어간 형태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 정도면 먹을 수 있겠다 싶어 긍정의 답을 보냈다. 평소 식사를 종종 거르던 나를 위해 엄마가 선택한 간식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집에 도착한 떡을 보니 이건 진한 초록빛을 띠고 진득하게 늘어지는 형태의 떡이었다.
사실 나는 매우 쫀득하고 진득하게 늘어지는 떡 종류를 좋아하진 않는다. 예를 들면 찹쌀떡 같은 것들. 꽤 많은 양이 도착해 먹기 좋게 한 개 혹은 두 개씩 포장해서 냉동실에 넣으며 이걸 어찌 처리해야 하나 한숨이 몰려오기도 했다. 평소 먹기 싫은 음식은 죽어도 입에 대지 않던 버릇은 여전하다 싶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요즘 냉동실을 열고 간식이 필요한 시점에 떡을 한 줌 들어 먹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 취향의 간식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꾸 찾게 되는 건 엄마가 보내준 쑥떡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상해버린 밑반찬, 김치찌개를 해 먹기에도 애매해져 버린 너무 쉬어버린 김치 등등. 독립하고 나서 냉장고 청소를 할 때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로 직행했던 몇몇 엄마의 선물을 생각하면 이번 쑥떡은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아마도 얼마 전, 차갑게 얼어있던 내 마음이 녹아내렸던 그 날의 문자가 이런 생각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용기가 없어서 그리고 엄마가 괜히 걱정할까 봐 내 어려움을 아직도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 이겨내려 노력하는데, 나중에 언젠가 엄마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서운해 할 수도 있다. 그런 날이 온다면 꼭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버팀목이 되어준다던 그 문자, 그리고 갑자기 집에 도착했던 쑥떡 그것 만으로도 나는 매우 편안하게 기대어 쉴 수 있었다고.
얼마 전 언니에게서 받은, 엄마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함께 (대충) 찍은 셀카를 보며 눈물샘이 터졌던 건 고마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정신없이 일하느라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서로 조심하느라 생일이고 뭐고 기념일도 못 챙기며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그 사이, 조금 더 여위고 조금 더 수수한 모습으로 웃고 있는 사진 속 모습을 보고 뭐가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분명 강아지와 함께 웃고 있었는데 말이다.
내가 엄마가 된다면 우리 엄마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