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모습을 마주하자 숨고 싶어졌다

by Julie

대학생 때 썼던 아이팟터치를 열어보거나, 오래 묵은 이메일함을 뒤적이다 보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얼굴이 빨갛게 닳아 오를 때가 있다. 여러 사람들과 주고받은 이메일, 커뮤니티 게시판 속 나의 말투를 보고 있자면 그렇다. 그때의 나는 여러 가지로 부족했다. 대화 스타일은 너무 직선적이었고 리액션이 따뜻하지 못했다.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좋지 못해 누군가가 나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기도 했었다. 과거의 자료를 보다 보니 썩 괜찮지 않았던 사람이 조금은 괜찮은 사람으로 변하기까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참 고생이었겠다 싶었다.


특히 내 인생의 첫 연애 상대였던 그에게는 아직까지도 미안한 감정이 조금 남아있다. 혹시나 내 생각을 전할 수 있는 텔레파시 같은 장치라도 있다면 진심을 담아 알려주고 싶다. 그때의 나는 너무도 불완전했다고.


그 당시 나는 남자친구와의 연애보다는 학교 동기들 혹은 친구들과의 모임이 더 우선순위였다. 생각보다 연애가 재미없었던 탓에 나는 의미 없는 만남을 질질 끌면서 상대방만 힘들게 만들었다. 그와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였을 때 내게 그는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으로 보였었다. 그래서 그와의 연애를 시작했을 때 제법 설렜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막상 만남을 이어가다 보니 그와 함께 있는 시간 자체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은 그대로 내 앞에 있었겠지만, 아마 나와의 케미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게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빠르게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매정하게 보일지라도 상대방을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행동이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 너무 불완전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몰랐고 어떤 것이 좋은 방향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걸 회피하려 하기도 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마치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서 그 관계를 조용히 유지시켜 나가려 했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이 만남은 평범한 연인들의 만남과 같을 수는 없었다. 발렌타인데이가 되자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서래마을에 가서 초코 퐁듀를 실컷 먹었다. 대학교 CC였던 우리는 학교에서 마주칠 기회가 꽤 많았지만, 학교에서 둘이서만 붙어 다니면 다른 사적 모임들에 영향을 받을 수 있으니 자제하자는,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 내 제안으로 인해 나란히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는 일도 별로 없었다. 그나마 평일 저녁 영화를 보러 가거나, 주말에 집 근처에서 맥주 한 잔 하는 정도의 만남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끔찍한 여자친구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럴 거면 연애를 왜 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때의 나는 관계에 있어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학교에서 그와 나를 같이 알고 지내는 친구들이 모여 나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그때에도 나는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만 만나자 “는 말이 그렇게도 내뱉기 어려웠을까. 그 상태로 남자친구는 군대에 갔고 결국 그 안에서 처절한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과거의 내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20대 후반이 되어서도 고치려 노력해 봤고 그럼에도 또 부족한 부분이 보여 30대가 훌쩍 넘어 또다시 나를 갈고닦았다.


친한 친구에게도 공유하지 못하는 내 부끄러운 과거 행적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주 큰 교과서이자 중요한 레퍼런스 그 자체가 되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지.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지. 다른 사람에게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피해를 주지 말아야지. 몇 번을 되뇌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도 얼마나 내가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


어릴 땐 그럴 수도 있다고, 잘못했던걸 알고 고쳐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 누군가는 얘기할 수도 있지만, 과거의 나를 마주할 때마다 낯 뜨거워지는 나 자신에게는 뭐라 해줄 말이 없다.


아직까지 내 곁에서 남아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에게 진심을 담아 고마워할 뿐이다.


고마워요.

그래도 나이 먹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니 조금 더 노력해 볼게요. 당신들의 얘기에도 잘 공감해 주고 당신들에게 어려운 상황이 생기더라도 옆에서 잘 지켜보고 방향 제시도 해볼게요. 좋은 관계를 잘 만들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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