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간을 뛰어넘은 만남.
여느 때와 다를 것 하나 없다. 목적지가 정해졌다. 출발 한 달 전 쯤 비행편을 예약하고 서둘러 일정을 짠 후 빠짐없이 숙소를 예약한다.
오롯이 내 힘으로 생활비와 등록금을 해결해야 했던 대학 시절, 두 세 달의 긴 여행은 그저 꿈에 불과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회사와 대학원을 전전했다. 결국 이십대의 끝자락에 배낭을 짊어졌다. ‘서른’ 넘은 ‘대한민국’ 국적의 여자가 모아놓은 돈을 야금야금 까먹으며 여행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첫 번째 여행을 다녀오고서야 알게 됐다. 33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부러움과 걱정이 섞인 말들이 여독이 채 풀리기도 전에 날아들었다.
“너 내년이면 서른이야. 언제까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순 없잖니.”
고작 한 달, 배낭여행 한 번 다녀왔다고 한국에서의 난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사는 여자’가 되어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진짜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아봐?’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언제나 여행이었다. 꽂히는 곳이 있으면 그 나라에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머무르는 그런 여행. 그렇게 두 번째, 세 번째 여행으로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를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 네 번째 여행의 목적지는 독일로 정해졌다. 왜 하필 독일인지 그럴싸한 이유는 여행을 하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가 정말 그 나라가 좋아서 갔던 것이라면 독일에 대한 내 감정은 ‘무(無)’에 가까웠다. ‘우리나라보다 잘 살아서 부럽고 궁금하다.’정도? 여정을 마쳤을 때 ‘호(好)’가 되어 있을지, ‘불호(不好)’가 되어 있을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독일에 가고 싶다는 마음만은 확실했다.
지도를 펴놓고 보니 독일은 생각보다 엄청 넓었다. 귀에 익숙한 도시를 중심으로 점을 찍고 선을 이어 독일이라는 면을 채워나갔다. 얼추 일정이 나왔을 때 비행기 표를 샀다. 북서부의 대도시 함부르크(Hamburg)로 들어가 74일 후 수도 베를린(Berlin)에서 귀국하는 여정이다. 여행을 준비하며 한국어로 된 여행 정보가 얼마 없음에 깜짝 놀랐다. 독일은 우리나라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나라가 아니란 말인가. 그 빈약한 여행 정보를 긁어모으면서 ‘과연 난 두 달 반 동안 독일에서 잘 지내다 올 수 있을 것인가.’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도 좋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다른 무엇보다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애초에 동행을 구할 수 있는 일정도 아니었거니와 동행을 구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우리 어디에서 언제 만나요.’라는 약속 없이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는 마음 맞는 이가 있다면 함께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 날이 쌓여갈수록 많은 우연한 만남들이 날 행복하게 해주었다. 안타깝게도 그들과 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몇 분이고 몇 시간이고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나에게만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행 내내 나와 함께 했던 그 동행은 바로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이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옛 친구도 있었고 마치 오래 전부터 그 곳에서 날 기다려온 것만 같은 새 친구도 있었다.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74일간의 독일 여행을 다채롭게 만들어준 그 동행들에 관한 것이다.
- 일러두기
1. 본 매거진에 게재되는 사진의 대부분은 필자가 촬영한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출처를 밝힙니다.
2. 참고 문헌과 자료는 마지막에 한 번에 게재합니다.
3. 필자는 미술 전공자가 아닌 그저 예술작품 감상을 사랑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오류 지적은 언제라도 환영입니다.